형네 가족이 서울로 돌아오고 어쩐지 제주가 멀게 느껴졌다. 다시 갈 일이 생길까 궁금했다. 예상보다 금새, 새로운 마음이 생겼다. 아마 또 다른 느낌이겠지? 그리고 기억을 찾아 다니겠지. Jeju. Korea Aug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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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네 가족이 서울로 돌아오고 어쩐지 제주가 멀게 느껴졌다. 다시 갈 일이 생길까 궁금했다. 예상보다 금새, 새로운 마음이 생겼다. 아마 또 다른 느낌이겠지? 그리고 기억을 찾아 다니겠지. Jeju. Korea Aug 2020
이사온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변하지 않은 것이라면 잠잠해지는 줄 알았던 전염병뿐이고 그 증세이자 후유증 중 하나는 누군가를 향한 고열의 증오라서 바깥 세상은 정말로 무섭다. 매일 아침 KF94 마스크 속 입술을 깨물며 집을 나서 아무렇지 않은 척 소꿉장난 같은 장사를 하고 벌써 조금씩 낡기 시작하는 새집으로 서둘러 돌아와서야 비로서 조금 안심한다. 진짜 병에 옮거나 앓지는 않았어도 우리 모두는 좀 아픈 것 같다. 오랜 시간이 걸려 낫거나 영영 회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약하고 악해져 버렸다. 희망 보다 면역에 기대는 삶. 회복 보다 적응에. Seoul. Korea Aug 2020
서른에 이사와 마흔이 되어버린, 아내와 나의 30대가 오롯이 배인 집을 떠난다. 이사 결정 자체는 꽤 즉흥적이었다. 슬슬 옮겨볼 때가 된 것 같았고 몇 해째 괴롭히던 개미도 더 많아졌으니 도망이라도 가는 셈 치자 싶었다. 틈틈이 근방 매물을 확인하고 결국 예산에 맞춰 새집을 결정했다. 매일 밤 무수한 계획을 세웠지만 아침이면 다 무너지고 말았다. 누군가와 싸우고, 포기하고, 새로운 계략을 세우길 반복했다. 이사 날짜가 다가올수록 점점 현실성이 옅어져 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욕심을 부렸나 싶은 생각이 들 때 서글펐고 그리 큰 욕심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을 때 괴로웠다. 이 집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정직해서 결국 어찌어찌 이사 목전까지 왔다. 새집 생각, 이사 걱정에 줄곧 정신 없다가 비로서 비우게 될 이곳에 미련이 가득 차는 밤이다. 10년,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바람대로 잔잔한 날들이었다. 정말 30대를 벗어나 마흔 살이 되는 것 같다. 도무지 설명하기 어려운. Yeok-chon, Seoul, Korea Jun 2020
황무지
풀밭에 앉아, 풀밭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을 본다. 우리는 그저 그 곁을 스쳐 지나기만 한다. 낡은 집에 함께 서식하는 벌레 덕분에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엔 호기심이 없다. 밖에서까지 벌레에 시달리지 싶지 않은 까닭, 그 하나의 이유다. 이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집을 떠난다는 홀가분함이 크지만 사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낡음과 더불어 10년을 살았다. 이사를 잘 마칠 수 있을까, 새로운 곳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새 집에 벌레는 없을까? (있으면 안돼) 고민고민 끝에 도메인을 연장했다. 마음이 번잡하고 분주하다. Seoul. Korea
백련산 Seoul. Korea May 2020
낯선 아픔들
저녁 늦게 본가에 잠깐 다녀왔다. 고작 500m 거리인데 구정 이후 처음인가? 이따금 통화하긴 했지만 별일 없어 보이는 아빠, 엄마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어찌어찌 구한 싸구려 마스크 일부 떠넘기고 서둘러 돌아왔다. 현관을 나서는 찰나 엄마는 호두 체력이 더 떨어진 것 같다며 유모차 얘기를 슬쩍 꺼냈다. 필요성은 수긍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당연한 것들이 점점 마음 아파진다. 아픔에는 당연한 것이 없듯이. Mar 2020
The wonder year
친구의 언니가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하셨다. 삶과 죽음에는 뚜렷한 사이클이 있어, 너울이 심할 때, 잔잔할 때가 있다. 굳이 나누자면 그럭저럭 잔잔한 시기라 이럴 때의 부고는 더 느닷없고 참담하다. 오래 전, 친구에게 돈독한 언니 얘길 몇 번 들은 적 있다. 함께 길에서 마주친 일도 있는데 '공부 좀 하라'며 잔소리를 들었었다. 20년이 지난 영정사진 속 얼굴은 기억이 날듯 말듯 낯설었다. 홀로 남겨진 남편께서 초면인 우릴 보고도 눈물을 터뜨리셨다. 친구도 따라 울었다. 죽음으로 가는 속도가 보편타당하고 일정하길 바라지만 삶의 길이는 밤의 해저 같아서 보이지도, 가늠할 수도 없다. 세상이 아무리 눈부시게 발전해도 어둠은 가시지 않는다. Jan 2020
12월은 내내 하와이앓이만 했다. 실망하기 전까지는 계속 그럴지도 모르겠고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생하지만 먼 곳. Kailua. O‘ahu. Hawaii Dec 2018
슬램덩크의 마을, 가마쿠라에 갔지만 정말 들르고 싶었던 곳은 코쿠라쿠지 역이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이복자매 '스즈'와 '요시노'가 아침마다 뛰어와 열차를 잡아타던, '사치'가 엄마에게 매실주를 건네며 헤어지던 그 역. 예상만큼 작고 기대보다 더 예뻤다. 플랫폼을 지나는 철길이 하나뿐이라 시간에 따라 맞은편 열차가 교차하는 풍경도 특별했다. 다시 갈 일이 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득해진다. 매실주를 건네 받고 헤어진 것처럼. Gokurakuji. Kamakura. Japan Aug 2019
작년 하와이 여행 전에 몇 번이나 영화 디센던트를 다시 보려고 했지만 오아후에만 머물기로 하면서 결국 보지 않고 다녀오고 말았다. 여행 내내 매 순간순간 언제 이곳에 또 올 수 있을까 벅참과 애틋함을 동시에 느꼈다. 오롯한 기쁨만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가 심각하게 지연되어 반나절 넘도록 공항에 갇혀있으면서 창 밖의 시리도록 파랗고 따뜻한 하늘만 실컷 바라봤다. 드디어 비행기에 몸을 싣고 구름 위로 떠올랐을 때 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다. 마치 분화구에서 용암이 콸콸 쏟아지는 것 같았다. 식사도 마다하고 곯아떨어졌다.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았고. 돌아와 몇 번이나, 턱없이 짧았던 여행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애썼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디센던트를 다시 보았다. 몇몇 낯익은 풍경과, 지난듯한 거리, 거닐었던 해변을 발견하고 또 애틋함과 벅참을 동시에 느낀다. 영화는 내내 아프고 낫길 반복한다. 영화가 아닌 것들도. Seoul. Korea Jun 2019
망원에서 합정엘 가 밥을 먹고 연남동으로, 연희동을 가로질러 응암동으로, 버스를 탈까 고민하다 결국 집까지 걸어왔다. 세계과자점에서 불량식품도 사고 어둡고 황량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음엔 어디서 밥을 먹어보자는 둥 모교 앞을 지날 땐 학창시절 얘기도 잠깐 했다. 눈에 띄는 부동산마다 멈춰 집값도 구경했다. 이 정도는 거뜬했는데 이제 발바닥도 뜨겁고, 가방 맨 어깨도 아프다며 투덜대긴 했지만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금새 온 것 같기도 하다. 계절은 늘 저만치 있다가 금새 지나치고 만다. 차창 밖 풍경처럼 다가가지 못하고. Seoul. Korea Mar 2019
Bye by bye Seoul. Korea 21 Feb 2019
아빠가 곧 은퇴를 하신단다. 이미 전부터 힘에 부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저 버텨주시길 바라며 응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 아빠가 엄마의 만류를 뒤로 하고 30년간 근무하던 은행을 그만두실 당시 갓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형과 첫 직장에서 도망 나와 궁상 떨던 나까지, 네 가족 모두가 집에(만) 있던 때가 있다. 하나밖에 없는 컴퓨터로 아버지, 형, 내가 번갈아 이력서를 썼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뿌연 각오와 자욱한 불안이 재떨이를 가득 채웠다. 하루 세끼 밥을 차려 주시던 엄마는 여기가 지옥이라 하셨고 미처 돌보지 못한 스트레스는 갱년기 증후군을 이끌었다. 다행히 몇 개월 사이 모두 직장을 구했는데 아빠는 그때 그 회사를 여태 다니셨다. 15년 근속이라 한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여전히 마음 저릿한 시절이다. / 아빠는 어떨까 모르지만 난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아빠가 다른 직장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어렵다. 실수로 아빠 이력서 첨부해 메일을 보냈던 그때가, 엄마의 지옥이, 아빠만 따르던 앵두가, 녹번동이 그립다. Dec 2018
https://www.flickr.com/photos/amheart/albums/72157700938115821 머무는 시간이 짧던 만큼 순간의 밀도가 높았다. 발바닥이 딱딱해져 갈수록 머리는 물렁물렁해졌다. 이튿날 아침, 일행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숙소 앞 공동묘지를 둘러봤다. 빌딩숲 속 묘지에 저마다의 비석이 빌딩처럼 늘어서 영원은 없다 약속하고 있었다. 낮고 또렷한 마천루. Tokyo. Japan Oct 2018
광장시장에서 낙산으로, 혜화동을 가로질러 아라리오 뮤지엄까지 걸었다. 아직 가을에 미치지 못해 따가운 햇살도 여름을 지나 서늘해진 그늘도 좋은 날이었다. Seoul. Korea Oct 2018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af0aa3e4b027da00d35bfd
그래도 보잉은 언제나 747로 기억할테지.
시네큐브에서 영화를 보면 뭐라도 되는 양 마음이 부풀던 때가 있다. 귀한 영화를 많이 상영하기도 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고는 한없이 감격해 언젠가 꼭 쿠바에 가자며 손을 잡고 상영관을 나섰었다. 그사이 우린 세상만큼 많이 변해 불특정다수가 모이는 곳에 가길 꺼리는 편이 됐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그 중에 또 거르고 걸러 극장에 간다. 얼마 만에 시네큐브에 왔는지 모르겠다. 조금 젠체하는 분위기, 우리가 고양됐던 예전 공기가 그대로 남아있어 어쩐지 부끄럽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좋았다. 영화를 보고 덕수궁 돌담길을 걷자 하곤 깜박한 채 그냥 집에 와버렸다. <어느 가족>이란 영화를 봤다. 늘 그렇듯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필요한 이야기였다. 나는 콧물을, 아내는 눈물을 잔뜩 쏟았다. 여름이 끝난 날이기도 했다. 이번 여름. Seoul. Korea Aug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