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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solaris
그 많던 블로거들은 다 어디갔을까
고민과 생각과 피곤이 정말 많던 월요일이었는데, 하루의 끝에 “단순하게 살아 그냥” 이라는 툭 들려온 말 한마디에 모든게 편안해졌다.
일년중 4월 30일 오늘밤에만 누려볼수있는 낭만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할때마다
딱 한발만 물러서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금방 배부른 소리 한다고 나 자신을 타이른다. 항상 매사에 고마워하고 욕심내지 말자.
모든 것
프랑스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에겐 여성편력이 있었다. 숱한 스캔들을 뿌리던 그는 마침내 36살의 나이로 11살 연하의 여자와 결혼에 골인하며 정착하는듯 했다. 디자이너였던 그녀의 이름은 로잘리 텍시에(Rosalie Texier) 였다. 제대로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할만큼 몹시 가난한 피아노 교수의 삶을 살던 드뷔시였지만 그는 충실한 가장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행복은 채 5년밖에 가지 못했다. 드뷔시는 가르치던 학생의 엄마인 엠마 Emma와 눈이 맞는다. 부유한 은행가의 딸이었던 엠마는 로잘리 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드뷔시는 병약했던 로잘리를 저버리고 엠마와 도망치고 만다. 드뷔시는 이 일로 많은 친구들을 잃고 최악의 스캔들로 손가락질 받으며 돈 때문에 아내를 버린 남자가 되었다. 하지만 1년뒤 드뷔시와 엠마 사이에선 딸이 태어나고 뒤늦게 아빠가 된 드뷔시는 그 여자아이를 위해 <어린이의 세계 Children’s corner>라는 모음곡까지 작곡한다. 표지 디자인과 헌사까지 쓴 드뷔시의 딸 사랑은 각별했다. 그 딸의 이름은 드뷔시와 엠마의 이름을 합쳐 지은 클로드 엠마(Claude Emma)였다. 스캔들이 잠잠해지고 파리로 돌아온 말년의 드뷔시는 결장암으로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때까지 남은 여생을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을 바라보는 낙으로 보냈다고 한다.
드뷔시가 엠마와 달아나버린 후 로잘리는 권총자살을 시도하지만 총알은 복부를 관통했을뿐 목숨을 건진다. 그리고 드뷔시가 세상을 뜬 바로 다음해, 그가 로잘리를 저버리고 엠마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랑하던 딸 클로드 엠마도 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로잘리 텍시에의 별명은 '릴리' Lily 였고, 클로드 엠마의 애칭은 '슈슈' chou-chou 였다고 한다.
Grand Central Terminal, NY.
곧 떠난다. 그래서 그런것일거라고 혼자 위로해본다.
2019.01.10
낮밤은 제대로 돌아오는것 같고 수면의 질이나 패턴도 재자리를 찾았는데, 교수님 부재중이라서인지 아니면 실험 진전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새해 증후군이라서인지 오늘 무기력의 정점을 찍었다. 아침 9시에 개운하게 일어날수 있었음에도 뒤척거리다가, 아침까지 요리해먹고도, 그러고도 씻고 나가지 않고 한 숨 더 잤다. (놀랍게도 6시간여를 자고도 더 두시간을 더 잤다.) 그렇게 2시쯤 일어나 학교를 가면서도, 을씨년한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막스 리히터의 음악 때문인지 무기력감이 몰려왔고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의 시작이 과히 좋지 않다는걸 잘 알고있는 지난 10일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내가 무얼 원하고 있는지, 지금 당장 닥쳐있는 문제는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타르코프스키.
벌써부터 새해는 다이나믹해질 예정이다
카우보이비밥을 요즘 다시 보고있는데, 이전까지는 스파이크의 줄리아를 향한 연정과 그리움이 개츠비스러운 낭만처럼 보여서 페이의 스파이크를 향한 짝사랑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과거의 누군가를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현재 홀로 좋아하고 있다는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이제서야 조금씩 보인다.
장례식장과 결혼식장을 하루에 모두 가게되었던 이상한 하루.
어느 노 교수님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로운 연구 결과 소식이 실린 기사의 링크와 간략한 설명과 함께 맨 마지막에 '역시 살아있길 잘했다..' 라는 문장을 달았다. 이런게 각자가 간직하고 살아가는 삶의 이유라는게 아닐까. 나도 저 나이가 되었을때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을 뭔가에 애정과 열정이 넘쳤던 인생이길.
외출 예정이 없는 날 이렇게 내리는 비는 언제나 환영이야.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먹는 편은 아니지만 몇몇 메뉴는 어쩔수없이 배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음식이 먹고 싶은 날이었다. 늘 주문하던 곳에서 매번 먹던 메뉴가 있었는데 최근 통화 목록을 주룩 내리다가 첫단어만 보고 전화를 걸었더니 다른 매점으로 연결되었다. 나는 늘 주문했던 메뉴를 말했고, 잠시뒤 도착한 배달원을 위해 현관문을 열어줄때만 해도 나는 뭐가 잘못되었었는지 눈치를 못챘다. 그 매장에도 내가 평소 주문하던 메뉴와 같은 이름의 다른 음식이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 새로운 메뉴에 거의 도전하지 않던 나는 이렇게, 새롭고 신선한 (예상치못했고 예정에도 없었던) 음식과 함께 만족스러운 저녁을 보냈다. 이런게 진짜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라는 부제가 아닐까. 하하.
요즘 심심하면 다방같은 방찾기 앱을 켜고 동내에 나온 매물들을 찾아본다. 당장 이사할것도 아니면서 금전적인 것부터 현실적인 부분까지 다 꼼꼼히 걸러낸다. 아늑한 내 공간이, 이 보다 더 나은 곳 없다는걸 알면서도 이러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어쩌면 10년 넘게 해오던 블로그가 더이상 내 블로그 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어디 발 붙이고 정 붙일 곳을 찾아헤매기 시작하던 시기와 그 시작이 비슷했다. 현실에서든 가상에서든, 지금 나는 내 공간없이 부유하고 있다.
그래도, 결국 이 계절의 학교가 내겐 제일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