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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choi
2023년 사소한 다짐들
검은 옷 적당히사기 , 흘려보내기 , 큰 마음쓰지 않고 많이 바라지 않기, 잘 비우거나 버리기, 가벼운 마음
간만에 텀블러를 들어와 몇 달 전 수년 전 글들을 다시 들춰보는데 지우고 싶은 것들이 한가득이다. 싸이월드 다이어리 같은 것들이. 다 지워버릴까 싶다가도 저 때의 나도 똑같이 나지 뭐 하면서 내버려 둔다. 아직까지는 특정 년 월은 다시 보면 그 당시 어떤 일이 있었고 뭔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기억이 선명한데 수년 더 지나 거 희미해질 때까지만 내버려 둬야지. 다시 봐도 재미도 오그라듬도 아무 느낌이 안 들 때까지만
며칠 전에 본 PTA의 리코리쉬 피자, 몇 년 전 개봉날 달려가서 본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가본 적도 없는 나라와 살아보지도 않았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내가 초등학생이고 작은형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같이 집에 있을 때면 거실에 엉덩이 나온 모니터에서는 항상 형이 틀어놓은 마룬 5 음악이 들렸다.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이런 거 없던 시절 윈앰프에서. 아마 내 기억 속 첫 번째에 존재하는 밴드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This Love / She Will Be Loved / Sunday Morning으로 관심 갖기 시작했겠지 ... 디스러브는 한때 전주가 흐르기 시작하면 '친구들이 나보고 병신이래'라는 가사가 먼저 튀어나왔지만.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알 수 없는 시점에 꾸준히 다시 찾게 되는 노래들. 언제나 플레이리스트에 있다거나, 하트표가 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노래들. 이 외에도 더 존재하겠지만 요즘 다시 꺼내들은 두 곡
눈이 녹지 않은 산, 겨울의 서핑, 막히지 않는 도로, 머리 위로 떠다니는 비행기, 길마다 있는 야자수들과 울창한 숲. 도시 한복판에선 마주하기 어려웠던 것들
햇수로 3년 만에 비행기를 탔고, 20대를 지나쳐 13년 만에제주도를 다녀오는 길. 제주 공항 도착 전까지 얼른 집에 가고 싶고 대한민국 땅에선 서울이 최고라고 외쳤다. 내가 이 나라에서 지낼 도시는 이곳뿐이라고. 김포에 접근할 때쯤부터 상공에서 보이는 환한 불빛들이 너는 도시에 왔다고 알려준다. 돌아왔다는 걸 인지한 순간 울컥했다. 안 나오던 눈물이 나올 것처럼. 그 어딜 다녀와도 이런 기분을 경험해 본 적 없는데. 여태 여행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머릿속에 선명히 오래 자리 잡을 거 같은 기억들이 만들어져서 그런가. 너무 간만에 여행이라 그런가. 몸은 떠나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떠나 느낀 여행의 분위기를 두고 오기 싫었나 보다. 돌아와서 친구들에게는 이렇게 축 처질 줄 알았으면 가지 말걸 그랬다고 한다. 어디 평생 다시 못 갈 곳 다녀온 거도 아니고 국내 3박4일 있다 와서는 주책이다.
노래와 장면들
2018년 10월 도쿄 Frank Ocean ‘Blonde’
전역을 하고 다시 도쿄를 갔다. 숙소는 메구로 역 앞에 위치했다. 날씨가 아주 맑았지만 미세한 지진이 일어났다. 무언가를 감지했지만 한국에서는 지진을 느껴본 적 없었기에 숙소를 나와 친구의 연락을 받고 알았다. 길을 걸으며 ‘이렇게도 맑은 하늘과 지진이라는 건 안 어울리는구나’라는 공상과 함께 듣던 앨범은 블론드였다.
2018년 10월 도쿄 2 Lil Kim - Crush on You
도쿄 시부야에 빌라 같은 건물 3층인가 4층에 ‘Bloody angle’이라는 바가 존재한다. 현지 친구가 추천을 해줬었나... 보라색과 벌건색의 오묘한 조명 아래 LP로 노래를 트는데 빈티지한 질감의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온다. 나스의 앨범이 통으로 흐른 다음에 처음 들어본 곡이 나왔다. 죽이는데? 바로 샤잠을 켰다. 조금 민망해서 바에 있는 직원에게는 보이지 않게.. 릴킴의 크러쉬온유 였고, 한국 와서 가게에서 질리도록 재생했다.
2016년 9월 추석 양양 Travis Scott ‘Birds in the trap sing McKnight’
이날 비가 온 걸로 기억한다. 아마 입대 전이라 할머니를 오래 봐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연휴 기간 내내 머물렀고 노트북도 챙겨갔다. 이름도 모르고 위치도 기억 못하는 카페에 갔다. 이런저런 디깅을 하다 앨범이 나왔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고 한 곡에 꽂혀 앨범을 찾아 다운받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부터 스캇이 전에 발매했던 곡들도 찾아 듣고 그 뒤로도 지금까지 팔로우하고있다.
2013년 5월 Daft Punk ‘Random Access Memories’
짧게 다녔던 대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때다. 새벽에 노트북을 하다가 앨범이 발매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하루빨리 듣고 싶은 탓에 구글을 통해 어둠의 경로를 이곳저곳 탐색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운로드 시간이 소요되었다. 1번 트랙을 재생 시킬 때 시간이 5시쯤이었다. 룸메이트가 잠에서 깰까 봐 노트북에 이어폰을 꼽고 들었다. 지금까지도 제일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
어제 일본 브랜드 준야와타나베가 자미로콰이의 제이케이와 협업으로 컬렉션을 진행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미지와 영상이 나왔다. 국내에도 꽤나 알려진 Virtual Insanity의 뮤직비디오를 오마주 했다. 간만에 곡도 다시 듣고 원래의 뮤직비디오도 찾아봤다. 그렇게 음악의 알고리즘을 타고 타다가 2010년에 자미로콰이가 발매했던 ‘Rock Dust Star Light’ 앨범의 ‘All Good In The Hood’ 곡까지 도착했다. 몇 년 전까지 항상 플레이리스트에 속해있던 곡이었다. 수년간 잊고 살던 곡을 재생시키자마자 바로 들었던 생각이, 이 곡이 내가 외국곡을 듣고 처음으로 리듬을 타고 춤이 춰지는 곡이었달까..라는 생각과 함께 버스 안에서 어깨가 들썩일 뻔했고 두발은 벌써 박자를 타고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놀 때 춤을 추는 스텝의 기반을 다져준 곡일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향수에 빠졌었다 대낮에..
축구를 좋아한다. 아무도 나한테 이 성인 남자 22명이 공을 쫓고 다니는 이 스포츠를 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월드컵이 대한민국에서 열렸고,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기 시작했고, 이 경기 저 경기들을 챙겨보다가 잉글랜드의 베컴에게 매료되었다. 베컴은 그 당시 맨유 소속이었고 자연스레 나도 그를 따라 맨유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몇 년 뒤 ‘해버지’ 박지성도 네덜란드를 거쳐 맨체스터로 왔다. 쨌든, 20년째 이 공놀이를 보고 있다. 앞에 10년 동안은 내가 응원하는 이 팀은 강력했고 우승컵 드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뒤에 10년, 즉 현재까지는 정점은 존재하지 않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다시 리그 우승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들게 만든다. 방금 전 경기에서 2:0 으로 이기다가 후반 막판 동안 2:2로 동점을 허용했다. 혼자 방 안에서 보고 있었음에도 육성으로 욕을 뱉었다. 내가 좋아서 보고 있으니까 고통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근래 새벽에는 챙겨보다가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복에 겨운 소리라고 할 수 있는 타 팀 팬도 있겠지만 원래 본인이 처한 상황이 제일 힘들다고 알고 있다. 차라리 첨부터 못하지 그랬어. 줬다 뺐는 게 더 힘들다 얘들아 헤헤..
지금보다 어렸던 시절에는 내가 좋다고 느낀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은 혼자만 알고 싶고 이게 더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남들은 얕게 안다고 생각하고 내가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일종의 홍대병과 허영심이 가득했었는데 일이년 지날수록 그런 건 다 고독과 외로움으로 빠지는 지름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항상 그럴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그 가치를 공유한 뒤 서로 공감하고, 내가 건넸을 때 '좋다'라고 돌아오는 피드백들, 영화가 끝나고 관을 나서면서 감상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조그마한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옷에 대한 고집들
반팔 티셔츠는 어깨선에 최대한 딱 맞게 입는다. 반바지의 기장은 항상 무릎 위로 올라온다. 맨투맨과 후드티의 손목 시보리는 꼭 반 접어서 입는다. 가지고 있는 청바지의 80퍼센트 이상은 기장이 복숭아뼈의 반 정도만 가릴 수 있도록 잘라져있다. 옷장 속 옷들이 다 다른 디자인들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부분이 한구석 씩 있다.
생각해 보면 유럽 애들은 빅리그 축구 경기도 기껏해야 시차 한두 시간 안에서 모두 즐기고 있구나. 새벽 네시 반 경기를 현재 시간 새벽 6시간 지나면서까지 한국어 중계로 듣고 있는데, 이걸 이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즐기고 있는 내 몸도 상했을 거고 이 시간까지 일주일에 두세 번씩 중계하는 양반들도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을 것이고. 지들 나라에서 보는 놈들은 저녁 시간 맞춰 밥 먹으면서 볼 거고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 다 처먹고도 밤에 또 이거 보고 있으면입이 심심해지니 아주 몸에 안좋은 편한 자세로 야식을 시켜 먹는다. 지구상에서 새벽까지 배달이 이렇게도 원활하게 잘 돌아가는 나라에 있기 때문에 자기 전 혹은 한밤중 무언가를 시켜 먹기에는 금상첨화이다. 새벽까지 안 자고 다음날 늦게 일어나든 일찍 일어나든 취침시간이 뒤로 밀리면 피곤하고 그러고 또 새벽에 말똥말똥하고 시켜 먹고 소화도 안된 상태에서 잠에 들면 이만큼 악순환이 또 없다. 누군가에게 말할 때 돈 안 드는 최고의 취미 월 만 원 언저리를 결제하고 세계 최고의 축구를 즐길 수 있다 떠들어댔는데 대신 수명을 깎아먹고있었구나.. 그랬구나...
Devil In A New Dress
매달 매주 어쩌면 매일 MBDTF를 습관처럼 반복하고 매번 들을 때마다 앨범에서 무한 반복 시키는 곡이 바뀐다. 최근에 꽂힌건 데빌인어뉴드레스.. 어느 곡에서도, 이 당시에도 못들어보고 그 후에도 못들어본 말도 안되는 비트의 웅장함과 더불어 릭로스의 최전성기 시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커리어 최고의 랩을 내뱉은 곡.
칸예 앨범은 듣다 보면 항상 샘플로 뭐가 쓰였을까 하고 찾게 되는데 이 곡에는
곡 발매일 기준으로 거의 40년전 노래인 Smokey Robinson - Will You Love Me Tomorrow 그 외 모든 샘플은 여기로..
중간중간 영화 대사로 샘링까지 조져버리고.. 수록된 곡 중에 앨범에 어울리지 않는 곡이 뭐가 있겠냐마는 Devil In A New Dress 와 Lost In The World 는 감히 앨범 무드와 제일 잘 어울린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앨범 최고의 곡이자 인생 최고의 곡은 바로 다음 트랙인 런어웨이..
내가 밑에 글을 다 쓰자마자 아스널은 한 골을 먹혀 3 대 1이 되었고 내가 지금 이 창을 켰을 때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조르지뉴가 키커로 나섰지만 아스날의 골키퍼 레노가 막았다. 내심 3:2가 되어 추가시간까지 질질 끌고 가서 비기거나 아스날이 지길 바라는, 3자 팬으로서 재미난 모습을 기대한 내가 좀 못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