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거리 위를 나뒹구는 낙엽을 보고 있다 문득,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버려진 혹은 잊혀진 이들의 마음을 꺼내보면
꼭 저런 모양새가 아닐까, 생각했다. 닳고, 구겨지고, 찢기고, 낡은.
10월의 가을 밤.
오늘도 누군가로부터 잊혀진 이들의 구겨진 마음이
거리를 정처없이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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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
거리 위를 나뒹구는 낙엽을 보고 있다 문득,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버려진 혹은 잊혀진 이들의 마음을 꺼내보면
꼭 저런 모양새가 아닐까, 생각했다. 닳고, 구겨지고, 찢기고, 낡은.
10월의 가을 밤.
오늘도 누군가로부터 잊혀진 이들의 구겨진 마음이
거리를 정처없이 떠돌고 있다.
연애고자의 글로 배우는 사랑
일을 쉬게 되면서 그간 못다 읽은 책을 탐독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며칠이다. 그렇다고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뚝딱 읽어내는 건 아니고. 이 책도 봤다가, 저 책도 봤다가, 괜히 멀리까지 걸어가 개중 가장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을 사기도 하는. 뭐 그런. 오늘도 저녁 바람이 선선해진 틈을 타 잽싸게 서점에 다녀왔다. 사실, 얼마 전 북카페에서 봤던 정현주의 <스타카토 라디오>라는 책을 구입하려 재고까지 꼼꼼히 챙겨보고 찾은 길이었는데. 웬걸. 딱 1권 남아있던 책이 때마침 팔린 상태. 아쉬운 마음에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다 결국 정현주의 사랑 시리즈 에세이 두 권을 집어온 길. 조금이라도 빨리 첫 장을 넘기고픈 마음에 근처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늘한 밤바람이 부는 야외 테라스에 앉아 한 구절, 한 구절을 눈으로 곱씹어 내려가는 시간. -사랑을 부르는 적절한 타이밍. -지금 사랑을 하기 위해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 -사랑을 부르는 주문 등등. 온통 사랑으로 가득한 페이지들. 그 핑크빛 향기가 얼마나 짙었냐 하면 마치 '지금 사랑하지 않는 너는 유죄니라.' 빳빳하고 날카로운 새 책장으로 채찍질 당하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니. 사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연애를 쉰 지 9년. 마지막 짝사랑을 끝낸 지 약 1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할 수밖에. 그래서 그런가. 새로 산 녀석들의 진도가 영 지지부진하다. 아마도 '사랑 이야기'에 절절히 공감하기엔 내가 너무 무뎌진 탓이겠지. 아아, 씁쓸하다. 사랑을 모르는 20대라니. 불쌍한 내 인생.
안녕, 나의 애란씨
오랜만에 라디오를 들었다. 귀에 착 감기는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진 DJ는 심야 라디오답게 서정적인 선곡과 함께 조근조근,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사연은 그랬다. 아픈 외할머니를 위해 잠시 떨어져 지내게 된 엄마의 존재에 대해. 그 빈자리에 대한 이야기. 문득 우리 집 '애란씨'-이하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애란씨의 웃는 얼굴, 새침한 목소리, 부지런히 움직이는 손가락. 오동통한 뱃살, 여전히 예쁜 얼굴, 설거지하는 뒷모습, 아빠의 무릎을 베고 쌕쌕 잠든 뒤통수 같은 것들이. 우리 집 애란씨는 욕심이 많은 여자였다. 빠듯한 생활비를 줄이고 줄여 인테리어를 바꾸길 즐겼고. 나이 사십이 넘어 공인중개사 시험에 도전했으며. 그녀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저 한없이 강해 보이는 그녀도 쉬고 싶은 순간들이 있겠지. 엄마의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로 베갯잇을 적실 때가 있겠지. 아마도. 자식들에게만큼은 한없이 위대하고, 무엇이든 포용할 자세가 되어 있는 나의 애란씨. 그녀도 여자라는 사실을, 누군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도 쉽게 잊고 산다. 미안해요, 애란씨.
/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여유를 즐기는 평범한 집순이의 자세. 밀린 책 읽기, 애완견과의 짧은 밤산책, 혼자 찾는 카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들.
매주 수요일은 늘 그렇듯 카페에 나와 작업을 한다. 분주히 자막을 쓰고, 고작 3초에도 바득바득 내레이션을 욱여넣으며. 어떻게든 말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시간.
천천히 가기
1.
이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정확히는 6년째, 연차로는 7년 차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컴퓨터 앞을 장시간 떠났던 기간은 고작 2주일 남짓. ㅡ겨우 그거 쉬면서도 마음이 초조해 눈물로 밤을 지샜지만ㅡ 가난한 자취생의 신분으로써 당장 눈앞의 생활비 걱정에 일을 쉬지 못한 것도 있지만. 남들은 열심히 앞을 향해 달리는 이때, 나 혼자 멈춰 선다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은 나를 기어코 책상 앞에 끌어다 앉혀 놓았다.
허나, 그렇게 해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적당히 좋은 동료, 직급 상승, 당방 정도는 거뜬히 쓸 수 있는 타자 속도, 저금은 한 푼도 못했지만 그래도 식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월급,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허리 통증?
반대로 잃은 것을 따져보자. 건강, 연애, 친구, 주말의 여유로움, 날짜 개념, 공휴일 등등 블라블라블라.
2.
그래서 그런가. 요즘 관심도 없던 여행에 자꾸 눈이 간다. 본디 박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집순이DNA를 타고 난 터라,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으로나 가겠지, 하고 살아왔는데. 근래에는 어찌나 밖으로 나돌고 싶던지. 노트북 없이, 당장 다음 주 방송 걱정 없이, 그냥 홀연히 비행기를 타고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에는 설연휴에 맞춰 실제로 홍콩 비행기표를 알아보기도 했는데, 선뜻 결제는 하지 못했다. 워낙 여행 젬병이라 무얼 어디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하고. 쩝. 만약 큰 맘 먹고 비행기표를 끊게 된다면 29년 인생에 홍콩만 4번째 가게 되는 것인데 ㅡ대학생 때 가족 여행으로 처음, 이후 두 번은 일로 방문했었다ㅡ 그것 또한 고민.
이래서야, 과연 나는 떠날 수 있을 것인가.
쉼
요 며칠,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매일이었다. 한 달 만에 돌아온 생방송은 나를 부끄러움에 고개조차 들 수 없게 만들었고, 열띤 회의에서 머리를 맞대고 짠 아이템은 보기 좋게 킬 당했다. 다 똑같은 사람 사이 급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고작' 그런 이들에게 섭외마저 거절당하고 나니 온몸이 가루가 되어 흩어질 것만 같았다. 마치 7층의 천덕꾸러기들로 전락해 버린 것 같은 참담한 기분. 처음에는 모든 게 남의 탓만 같았다. '그러게 왜 자기 마음대로 소품을 정리한 거야.' '나한테 미리 물어만 봤어도 좋잖아.' '내가 분명히 얘기했는데 왜 그 문장을 지운 거지.' '지까짓 게 뭐라고 출연을 하기 힘드니, 어쩌니, 우습지도 않아서.' 하지만. 상대를 가리지 않고 돌고 돈 날카로운 화살은, 결국 내 몫이었다. '그래, 내가 누군가를 설득하고 꿰어내는 말의 기술은 좀 부족하긴 해.' '다른 걸 챙기느라 정신없다는 핑계로 내 할 일을 제대로 못 한 거지. 내가 마지막까지 체크 했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시작된 끝없는 자책. 후회의 연속. 끊이지 않는 두통. 쉼, 쉬고 싶다.
사람 대 사람
01. 누군가를 만나고 사람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 나도 늘 고민하고, 실수하는 부분이지만.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사람은 말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은 큰 의미 없이 내뱉은 한마디가 오해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고. 물론 결국 쿨하지 못하게 혀 대신 손을 놀리는 나도 똑같다만. 02.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없는 사람에게 나는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배려하고 맞춰줘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으로 밤이 짧은 요즘이다.
그리다
요 며칠 만나는 친구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지금 그에게 얼마나 빠져 있는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뭐 이런 저런 것들. 생각으로만 품고 있던 것은 말이 되는 순간 그 색을 더욱 짙게 했고. 덕분에 나는 네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개편 이후 처음 맞는 프리한 주말에 서래마을로 나들이 다녀오는 길. 예상과 달리 볼것도, 갈곳도 마땅치 않아 당황하긴 했지만 어렵사리 찾아간 한식당은 담백했고. 생맥주에 감자튀김의 조합은 매우 옳았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이토록 즐겁다.
오늘도 전하지 못한 말
최근 끊임없는 먹부림의 흔적. 스트레스 받으면 당이 땡긴다더니. 당-당-당의 연속!
너는 모른다. 네가 아무 생각 없이 건넨 초콜릿이 누군가에겐 쉽사리 먹을 수 없는 묘한 설렘임을.
너는 아마 모를테다. 모든 손님에게 그렇듯 습관처럼 베푼 너의 짧은 호의에 종일 뒤꿈치를 들고 날아다니는 이가 있음을.
ㅡS에게
초콜릿
내가 너에게 그 말을 건네는 순간 너와 닿은 내 손끝이 얼마나 붉어졌는지, 아마 너는 모를 테다.
겨우 10평 남짓되는 좁은 방 안. 하루종일 나만 바라보고 선 내 작은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