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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ins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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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서히, 잔잔하게 꼬입니다.
12년 동안 교실에 모여있던 친구들이 졸업을 하고 스무 살이 되면 이제 저마다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때 명확한 목표가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이 시기에 이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미 확실한 목표가 있어서 스무 살부터 그 우물 하나만 열심히 파는 건 매우 드문 케이스예요.
보통 20대에는 이런저런 방황을 합니다. 당연히 헤맬 수 있죠. 그런데 이때 뭐가 문제가 되냐? 이 헤매는 과정을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여기부터 문제가 시작이 되는 거예요. 어떤 공부든 분야든 직업이든 도중에 포기할 수 있는데, 진지하게 열심히 해보고 그만두는 것과 대충 하다가 그만두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우선 진짜 열심히 하는 데까지 해야 미련 없이 털고 돌아설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또 어설프게 건드려보는 일이 없어요. 그리고 열심히 해놓고 좌절하면 어떤 분야든 만만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쏟은 노력이 아깝다고 느끼기 때문에, 다음 분야를 선택할 때 더 신중하게 고르고, 선택하면 절실하게 매달릴 수 있습니다.
반면 대충 하면 어떻게 되냐? 별로 애를 안 썼기 때문에 계속 하는 척 하면서 버티기도 쉽고 그걸 그만두기도 쉬워요. 그리고 그만두면 다음 분야도 별생각 없이 고르기가 쉽습니다. 공무원 준비나 한 번 해볼까. 커피나 한 번 배워볼까.
당연한 말인데 어떤 분야든 제대로 파면 다 빡셉니다. 그런데 이들은 나랑 잘 안 맞는 분야여서 여태 잘 안됐다고 생각하고, 잘 맞는 분야를 그저 발견하기만 하면 지금처럼 설렁설렁해도 잘 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마치 자존감 낮고 애정결핍 심한 사람이 연애만 했다 하면 다 엉망으로 끝나는데, 전 애인들을 몽땅 똥차 취급하면서 아무튼 다음 애인만 잘 만나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심리와 비슷하죠.
여담인데, 이 시점에서 집안 형편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합니다. 당장 싫어도 자리 잡고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이 무의미한 존버나 방황이 지속 가능한 것이죠. 대충 하면서 존버하는 이들은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았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 정도로 대충 하면 사실 진짜 기회가 와도 못 잡을 텐데 말이죠.
그리고 계속 천직 타령하면서 이것저것 쉽게 건드리는 이들은 경험주의라는 말을 신봉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열심히 안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분야에 대한 내공도 삶에 대한 경험치도 늘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한 가지, 나이만큼은 성실하게 쌓이죠.
20대를 보내며 이 과정은 서서히 문제를 키울 겁니다. 인생이 막 한 번에 쫄딱 망하고 그런 경우는 잘 없어요. 인생은 보통 서서히, 잔잔하게 꼬입니다. 제대로 된 노력 없이 살면서 그냥 어떻게든 잘 될 거라는 기대를 하며, 20대가 그렇게 서서히 지나가죠.
자 이제 20대 후반을 지나 서른을 넘겼습니다. 이때가 되면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습니다. 그게 막 대단히 큰 성과를 내고 그런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서 기초, 기반을 마련한다는 거죠. 좀 뒤쳐져 보이던 친구들도 이제 나름대로 사람 구실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에 비해 취향도 없고 꿈도 없어 보이던 친구들이 이제 취업해서 돈도 벌고 차도 사고 독립도 하는 걸 보면서, 20대를 뭐 하는 척 하면서 설렁설렁 살았던 낭만파들은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웃기게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며 큰소리치던 이들이, 이제는 점점 남들이 괜찮다고 하는 일, 좀 더 정확히는 쉽고 빠르게 성공할 수 있을 법한 일에 눈을 돌립니다. 왜 그럴까요? 정직하게 노력해서 성장한 친구들을 따라잡고는 싶은데, 그만큼 노력하기는 싫은 겁니다. 그래서 인생 한방 타령하면서 한탕주의에 빠지게 되는 거죠. 갑자기 요즘 핫한 아이템이라면서 잘 알아보지도 않고 대출받아 장사를 한다던가, 반응이 없으면 금방 때려칠 유튜브를 시작한다던가, 아는 사람 말만 믿고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주식에 손을 댄다던가, 그러다 더 가면 토토, 코인, 이런 친구들에게 인생을 배팅하는 경우도 생기죠.
연구도 안 하고 대충 성급하게 하는 그런 선택으로 인생이 풀릴까요? 남들이 바보라서 열심히 사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잘 될 수도 있긴 한데, 이제는 그걸 잘 된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운칠기삼이다 하면서 그런 일말의 가능성을 믿게 되면, 이제 진짜로 헤어 나올 수 없는 동굴, 끝없는 희망고문이 시작되는 거죠.
제대로 성장하려면 어느 분야건 기초부터 하나씩 배우고 차근차근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이제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데 이 시점에서는 그게 진짜 어렵습니다. 현재 입지가 뒤처진다고 느끼면 자존심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남들이 그랬듯이 막내부터 올라와야 되는데, 사람 심리가 그래요. 이제 존심밖에 남은 게 없기 때문에 그걸 못 버립니다. 내가 지금까지 헛물켜고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쉽지 않죠.
그래서 어디 어렵게 일자리 구해도 출근했다가 어린 선배한테 지적받으면 그게 열받고 쪽팔려서 금방 때려치우고, 이건 나랑 안 맞는 일이라며 또 20대 내내 했던 그 핑계를 댑니다. 계속 자리 잡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죠. 자리를 못 잡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젊은 꼰대가 되기도 쉽습니다. 꼰대질은 사실 유능한 사람보다 무능한 사람들에게 더 달콤한 재미를 줍니다. 동생들 만나면 평소에 눌려있던 자아가 팽창되면서 허접한 경험담 이야기하고 인생 설교하는데, 술값은 낼 능력이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 사람이 정말 계속 끝없이 못나질 수가 있다는 거예요.
이런 케이스 은근히 많습니다. 20대를 진지하게 사용하지 않아서 30대에 인생이 꼬인 케이스. 30대가 된다고 해서 당연히 돈을 잘 벌고 자리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충분히 젊고 목표가 있다면 더 꿈을 꿀 수도 있겠죠. 하지만 현실 위에서 이상을 그려야 합니다. 열심히 해보고 아닌 것 같으면 접을 용기도 필요합니다. 대충 하는 척하면서 삶을 낭비하는 건 곤란하겠죠.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면 마냥 편하고 좋지만은 않다는 걸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실 앞서 말한 타입의 사람들은 이상주의자도 아니고 현실주의자도 아니예요. 그냥 되는대로 살다가 인생이 꼬인 사람들이죠. 여유도 좋고, 힐링도 좋은데요. 오늘은 제대로 잘 사는 거 절대 쉽지 않다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양해민
긍정적이고 건강한 나를 위해
- 머뭇거리지 말고 도움 요청하기 -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으로 대하기 - 나를 챙기는 사람에게 가장 잘하기 - 다시 안 볼 사람은 없다는 사실 잊지말기 - 날 뒤통수 친 사람은 알아서 벌 받을테니 잊어버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한 나를 발견하기 - 실패를 창피해말고 실패를 통해 배울 점 찾기 - 받은 게 있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갚기 - 악의를 숨기고 행동하지 않기 -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혼자 끙끙앓지 않고 진솔하게 말해버릇하기 대신 해결방안을 구하거나 부담주지않기
이런 사람이 좋다/헨리 나우웬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 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불가능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좋고 다른 사람을 위해 호탕하게 웃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세련된 옷차림이 아니더라도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좋고 자기 부모 형제를 끔찍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바쁜 가운데서도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어떠한 형편에서든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노래를 썩 잘 하지 못해도 즐겁게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어린 아이와 노인들에게 좋은 말벗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책을 가까이 하여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이 좋고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잘 먹는 사람이 좋고 철따라 자연을 벗삼아 여행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손수 따뜻한 차 한 잔을 탈 줄 아는 사람이 좋다 하루 일을 시작하기 앞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 줄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때에 맞는 적절한 말 한마디로 마음을 녹일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외모보다는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다 새벽 공기를 좋아해 일찍 눈을 뜨는 사람이 좋고 남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좋고 더울 땐 덥다고 추울 땐 춥다고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다
삶이 대체로 힘든 이유
사람들에게 삶이 힘든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 중에 제가 생각하는 비중있는 두 가지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우선 첫번째 이유는 목표나 목적이 뚜렷하게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목표없이 방황할 때 불행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공과 부, 행복을 바라면서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그랬으면 좋겠어 하고 막연히 바라고만 있습니다.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는 배를 떠올려보세요. 사막에서 방향 없이 오아시스를 막연히 찾길 바라며 떠돌고 있는 방랑자를 떠올려보세요. 반복되는 부랑에 내일에 대한 기대가 높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힘들거라는 생각에 더욱더 힘들어지지 않겠습니까.
두번째 이유는 첫번째와 밀접하게 관련되있는데,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시간이 나거나 시간이 많아도 뚜렷한 목표가 없으니 무얼해야할지 몰라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니 낭비합니다. 그러면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불안해 하며 힘들어 합니다.
또한 해야할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서 힘들어 합니다. 나중에 가서는 고통스러워 합니다. 예를 들면, 사소하게는 양치질부터 하지 않습니다. 학생이라면 공부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아서 불안해 하며 힘들어 합니다. 또한 하고 싶은 일을 알아도 하지 않습니다. 주로 직장인들의 딜레마이자 전연령의 딜레마인데 시간이 없다 말합니다. 기회가 자본이 없다 말합니다. 그래서 안하고 못하는 거라며 힘들어 합니다. 발전 없는 기계적 일상에 안주합니다. 정년을 생각하면 불안한데 그런데도 지금의 일을 더 좋은 쪽으로 이끌려거나 혹은 나중에 나에게 힘이 될 능력 개발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힘들어 합니다. 안해서 힘들어합니다. 시간은 낭비하는 시간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낼 수 있습니다. 기회는 적어도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정도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자본이 부족하다면 돈을 더 모으려한다거나 적어도 꿈이나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지금에 내가 최소한 할 수 있는 무언가는 늘 있습니다. 그런데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힘들어 합니다.
이것은 감정적인 면에서도 유사합니다.
보통 길가다가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합니까. 다시 일어나서 가던 길 가지 않습니까?
물에 빠지면 헤엄쳐서라도 나오려 하지않습니까? 길을 잃었으면 길을 찾아갈 거 아닙니까? 버스를 잘못탔으면 내려서 제대로된 버스로 갈아탈 거 아닙니까? 그런데 넘어진 그대로 가만히 있고 물에 빠져도 그냥 꼬르륵 빠져들어가도 가만히 있고 길을 잃으면 그대로 주저 앉아있고 아무것도 하지않아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슬픔, 아픔, 고통, 우울, 걱정 이런 감정에 매몰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인식하고 벗어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깊이 빠져듭니다. 오래 붙잡고 늘어집니다. 이런 감정을 껴안는데 온 힘을 쏟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내 목을 잡고 끌고 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힘들어 합니다. 여태까지 모르는 게 있었나요?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서 힘들어 했던 겁니다.
괜히 많은 동기부여 영상에 just do라는 표현이 있는 게 아닙니다. 우선 목표나 목적을 잡는 게 가장 먼저 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부터 그냥 하세요. 할 수 있다 자신을 믿고 걱정 떨쳐내고 그냥 하세요. 실패의 기회비용이 적은 한 안돼도 뭐 어때 다시 하면 된다는 부담없는 마음으로 그냥 하세요. 그러면 점점 그 다음 단계가 보일 거고 힘들다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겁니다.
목표를 가지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을 해나간다면 낭비하는 시간과 더불어 낭비하는 에너지까지 없앨 수 있어 그 시간과 에너지만큼 활력을 얻어 삶이 덜 힘들어 지지 않을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 목표가 무엇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불필요한 감정들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는지. 슬픔과 걱정, 두려움은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지만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라는 경고등으로 그 감정을 인식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방향타를 잡으라는 것일 뿐 그 감정에 머물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의 삶에 대해.
나는 ‘설렘'이 무섭다. 아무리 외로워도 꾹 눌러 참아 공들여서 마음에 벽을 세워놓으면, 예고없이 찾아와 작은 바람으로 나를 붕- 뜨게 하고는 다시 사라져. 벽은 이미 무너져 있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는데, 마음을 추스리기가 참 힘들지. 특히나 가을 밤에는.
내가 혼자서 견디는 방법은 대개 이러하다.
날씨가 좋은 날 일렁이는 기분에 연락을 하지 않는 것, 당신의 하루를 궁금해 하지 않는 것, 잠을 잘 자는 것, 외로운 마음에 누군가를 만나러 가지 않는 것, 힘들 때 그림을 그리는 것,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누군가의 시를 읽는 것, 새벽에 홀로 깨어있지 않는 것, 나를 위한 선물을 사는 것, 다른 생각이 나지 않도록 여유롭게 살지 않는 것, 핸드폰을 꺼 놓는 것, 내가 놓으면 끝날 관계에 대해 억울함을 품지 않는 것, 나를 스쳐간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감정을 절제하는 것, 과거를 생각하지 않는 것, 잠깐의 슬픔이 하루를 망치지 않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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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사랑하는 일에만 안달이 난 적도 있었잖아. 보고 싶고 쓰다듬고 싶고 온종일 네 가슴과 내 등을 찰싹 붙인 채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날들이. 그날들의 햇살은 참 밀했고 내리는 빗방울들은 다정했고 불어오는 바람은 상냥했지. 커피를 식히려고 리드를 열어놓고 붙잡을 형체 없는 열기들이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때 그 꿈같은 날씨들이 자꾸만 생각나. 나는 그날들을 자꾸만 이렇게 적어 놓았더라. 안녕, 오늘은 햇살이 깊고 날씨가 너무 좋아, 안녕, 오늘은 비오는 희끄무레한 하늘과 침착한 소리들이 너무 좋아, 안녕, 오늘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내 머리카락을 헤집는 네 손끝 같은 바람이 너무 좋아. 사실은 네가 너무 좋았던 것임을 모르고. 모든 계절들을 어린 봄날 처럼 느끼게 해 준 것은 햇살도 비도 바람도 아니고 모두 너였단 것을 모르고. 어리석고 부족한 사랑들을 용서해. 어엿븐 우리들을 용서해. 맨발과 맨다리처럼 연약하고 눈부신 것들을 용서해. 이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슬퍼진 것을 용서해. 한동안 네 생각을 할거야, 내 마음엔 흠뻑 비 내린 숲이 으레 그렇듯이 어린 풀같은 네 생각들이 돋아날거야. 순진하고, 부드럽고, 향기로운 것들 뿐이겠지. 나는 그때에 슬퍼질까, 그것들은 너처럼 우아하게 정원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것들에 나의 벗은 몸을 부비면서 만족스럽고 정당한 슬픔에 내 마음을 모두 묻어버릴 수가 있을거야. 나는 콩알만큼 작고 단단한 사색들을 오독오독 깨물어 먹으면서 허영 가득한 치유와 회복을 기대하고 있어. 미안해, 하지만 그토록 도취하고 싶을 만큼 너와 나의 날들은 아름다웠어.
다른 사랑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기억이 그리 쉬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사소한 단어나 사물에서도 쉽게 생각이 났으면 좋겠고, 내가 사랑했던 너와 나의 풍경들이 영상처럼 떠올라서 좀 울었으면 좋겠어. 이건 너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야. 나에게 바라는 거야. 나는 너를 좀 그리워하고 싶어. 우리의, 아직 신선하고 빨간 마음들을 도리 칠 때, 아직도 그 존재를 잊지 못한 마음과 미움들이 환상통에 시달렸으면 좋겠어. 알잖아 넌, 내가 만족과 쾌감을 느끼는 방식을. 그 괴이하고 불건전하게 자라난 육종 같은 나의 기형을.
사랑해, 사랑이 다하는 순간이 언제일지는 아직 모르므로. 나는 이 사랑이 끝났다는 것도 모른 채 너를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될거야. 그 때, 너는 먼 곳에 있어도 그런 내 마음의 변화를 알게 될 것 같아. 나조차도 모르는 나의 변화를, 너는 귀가 크고 눈이 큰, 목이 긴, 상처 받기 쉽게 생긴 초식 동물처럼 기민하게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릴 것 같아. 그 때 네 곁에 있고 싶다.
지나가는 인연이 지나가는 것
그저 지나간 사람들을 지나간 시절들 속에 놓아둔다.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지나가는 인연을 지나가도록 두는 것이다. 평생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는 것, 오히려 평생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을 배운다.
늘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에게 좋은 것을 나누어주고, 서로의 삶이 근거리에 있는 동안 그 반경 속에서 서로를 챙겨주던 사람들. 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흘러가는 삶 속에서 서로를 지켜주었던 사람들.
한때는 그렇게 지나가는 인연들이 너무 아쉬웠다. 더 오래 서로를 지켜주고, 서로에게 돛이 되어주기를. 서로를 나아갈 수 있도록 떠밀어주는 존재로 남았으면 했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 밤을 새워가며 글쓰기, 인간, 꿈과 삶에 관해 이야기하던 친구는 휴대전화에 연락처조차 남아있지 않다.
매일같이 만나며 삶 속에 놓인 서로의 위치를 확인해주고, 그로써 지금 여기에 설 수 있게 해주었던, 꿈을 꿀 수 있게,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던 친구들도 더는 연락하지 않는다.
몇번은 일부러 연락을 하고, 과거의 기억을 벗 삼아 관계를 이어나가려고도 해보았다. 하지만 달라지기 시작하는 생활 반경과 발 딛고 있는 세계의 차이, 바라보고 추구하는 삶의 간극은 더욱 벌어질 뿐이었다.
그런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더는 흘러가는 인연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간 사람들을 지나간 시절들 속에 놓아둔다.
그들에 대한 감정을 현재에서 몰아낸다. 애착도 증오도 후회도 아쉬움도 없이 분리시켜 박제한다. 다른 삶에, 다른 세계에 놓였고 이제 기억이 된 사람들. 이따금 만날 일이 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현재 이곳의,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다른곳의,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아마 그럴 수 밖에 없는 데는 당신도 나도 삶 속에서 더는 과거의 자신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당신이 알던 나를 더 이상 모른다. 내가 알던 당신도 당신에게는 더 이상 당신이 아니다.
서로 과거를 향해, 기억을 겨냥하며 눈 앞의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니까 이미 새로워진 현재의 당신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위헤 덧씌운 내 기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렇게 지나간 시절을, 흘러가는 인연을 지나가도록 둘 수 있는 덕분에 또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새로운 삶, 새로운 세계, 새로운 생활공간에서는 또 새로운 사람들 만나게 된다. 내게 좋은 사람들, 서로에게 필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현재 눈앞에서 생생히 존재하는 그들에게 충실하려면, 역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는 일이 필요하다. 그들 역시 과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현재인 그들을 생생한 기쁨으로 받아들이자. 그 다음 일은 그저 시간에 맡겨두자.
/원문_정지우의 페이스북
뒤돌아보지 말 것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까지 찾아가 아내 에우뤼디케를 구해내는데 성공한 오르페우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가 주어집니다. 그건 저승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지요.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 설명에 따르면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포기했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이로 인해 아내를 데려오는 일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지요. 구약 성서에서 롯의 아내도 그랬습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심판 받을 때 이를 간신히 피해 떠나가다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었으니까요. 금기를 깨고 뒤돌아보았다가 돌이나 소금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전세계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탐욕스런 어느 부자의 집이 물로 심판 받을 때 뒤돌아본 그의 며느리가 바위가 되고 마는 충남 연기의 장자못 전설을 비롯해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여러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니까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입니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신들의 나라에서 돼지가 된 부모를 구출해 돌아가던 소녀 치히로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에 놓인 터널을 지나는 동안 결코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는 거지요. 그런데 왜 허다한 이야기들에 이런 ‘돌아보지 말 것’에 대한 금기가 원형(原型)처럼 반복되는 걸까요. 그건 혹시 삶에서 지난했던 한 단계의 마무리는 결국 그 단계를 되짚어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르페우스처럼, 그리움 때문이든 두려움 때문이든, 지나온 단계를 되돌아볼 때 그 단계의 찌꺼기는 도돌이표처럼 지루하게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소금 기둥과 며느리 바위는 그 찌꺼기들이 퇴적해 남긴 과거의 퇴층 같은 게 아닐까요.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시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나였다/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고 했지요. 정해종 시인도 ‘엑스트라’에서 “그냥 지나가야 한다/말 걸지 말고/뒤돌아보지 말고/모든 필연을/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고 했구요.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치히로가 그 힘든 모험을 마치고 빠져 나오는 통로가 다리가 아닌 터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개의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엔 다리와 터널이 있겠지요. 다리는 텅 빈 공간에 ‘놓는’ 것이라면, 터널은 (이미 흙이나 암반으로) 꽉 차 있는 공간을 ‘뚫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가 ‘더하기의 통로’라면 터널은 ‘빼기의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것은 얻어낸 것들을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삭제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초입을 터널로 지나면서 치히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몸으로 익히면서 욕망과 집착을 조금 덜어내는 법을 배웠겠지요. 박흥식 감독의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사랑이 잘 풀리지 않을 무렵, 윤주는 봉수를 등지고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면 돌이 된다”고 되뇌지만 결국 뒤를 돌아 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 쓸쓸히 확인한 것은 봉수의 부재(不在)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서 보세요. 치히로가 마침내 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터널을 통과한 뒤에야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뒤돌아본 이후가 아니었던가요.
[출처] 터널을 지날 때|작성자 이동진
‘ 어떤식으로든 상처가 되는 과거는 되도록이면 그것을 다 벗어나가전까지는 돌아보지 말 것.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완전히 끝 난 뒤에 뒤돌아볼 것.
다시읽어볼거야
영원이 아니라서
한번더 다짐해 봅니다
한 번 결정했으면 뒤돌아보지마
아픈건 극복하는게 아니라 잊는거라더라.
“허기를 달래기엔 편의점이 좋다. 시간이 주는, 묘한 느낌을 알기엔 쉬는 날이 좋다. 몰래, 사람들 사는 향내를 맡고 싶으면 시장이 좋다.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보기엔 극장이 좋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기에는 파도가 좋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생각할 필요 없이 내가 태어난 곳이 좋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위로 받기엔 바람 부는 날이 좋다. 여행의 폭을 위해서라면 한 장보다는 각각 다르게 그려진 두 장의 지도를 갖는 게 좋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알기 위해선, 높은 곳일수록 좋다. 세상 그 어떤 시간보다도,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이 좋다. 희망이라는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두근거릴수록 좋다. 고꾸라지는 기분을 이기고 싶을 때는 폭죽이 좋다. 사랑하기에는 조금 가난한 것이 낫고 사랑하기에는 오늘이 다 가기 전이 좋다.”
—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요 근래는 줄곧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지겹고 지루한 이 공간과는 사뭇 다른 세상을 살거라고. 다소 거창한 듯 싶었지만 쉽게 말하자면 숨 쉴곳이 필요하다는 말이였다.
그렇게 며칠 몇주가 지났고 그제야 8월이, 여름이 지나감을 깨달았다.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여름볕이 새삼스럽게 주는 아리까리한 분위기들이 난 좋았다. 그렇지만 떠나고싶다는 생각만 품고 지나온 지난 날들 가운데 아리까리한 기억은 없었다. 9월 달력을 미리 걷으면서 섭섭한 기운을 좀처럼 걷어낼 수 없었다. 지겨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며 앓던 순간들 속에 결코 내가 좋아하는 여름은 없었다.
단단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가 좋아하던 계절을 신경쓸 겨를 없이 숨 쉴곳을 그리던 마음도, 자잘한 말들에 휩쓸려 힘들어하는 마음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만이라도. 해본다. 2019년 여름 8월 끝
우리가 사랑이 아니면?
눈 내리는 어느 날엔 창밖으로 네 마음을 보여줬고 손잡고 산책하던 여름밤과 자두 주스도.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면 당장 내 앞에 와주는 널, 멍하게 바라보다가 보이는 말간 웃음이 너무 눈부셔서 내 것일 수는 없겠다고 슬퍼했던 나도. 잔뜩 취해서 나눈 애원 섞인 대화에 눈도 못 뜰 만큼 울던 우리가 사랑이 아니면 뭐였겠어
난 아마 죽을 때까지 네 사랑의 방식을 잊지 못해서 되뇌고 또 되뇔 텐데.
연애를 시작하면 한 여자의 취향과 지식, 그리고 많은 것이 함께 온다.
그녀가 좋아하는 식당과 먹어본 적 없는 이국적인 요리. 처음 듣는 유럽의 어느 여가수나 선댄스의 영화. 그런 걸 나는 알게 된다. 그녀는 달리기 거리를 재 주는 새로 나온 앱이나 히키코모리 고교생에 관한 만화책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녀는 화분을 기를지도 모르고, 간단한 요리를 뚝딱 만들어 먹는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았거나 혹은 그녀의 아버지 때문에 의외로 송어를 낚는 법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대학 때 롯데리아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까닭에 프렌치후라이를 어떻게 튀기는지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녀는 가족이 있다. 그녀의 직장에, 학교에는 내가 모르는 동료와 친구들이 있다. 나라면 만날 수 없었을, 혹은 애초 서로 관심이 없었을 사람들. 나는 그들의 근황과 인상, 이상한 점을 건너서 전해 듣거나, 이따금은 어색하나마 유쾌한 식사 자리에서 만나게 되기도 한다. 나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엿보게 된다.
그녀는 아픈 데가 있을 수도 있다. 재정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특정한 부분에 콤플렉스가 있을 수도 있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부모님과 갈등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그건 내가 잘 모르는 형태의 고통이다. 그러나 그건 분명 심각한 방식으로 사람을 위협한다.
그녀의 믿음 속에서 삶이란 그냥 잠시 지속되었다가 사라지는 반딧불의 빛 같은 것일 수도, 혹은 신의 시험이자 선물일 수도 있다. 혹은 그런 고민을 할 여유가 없는 것이 삶 자체라고, 그녀는 피로에 지쳐 있을 수도 있다.
요컨대 한 여자는 한 남자에게 세상의 새로운 절반을 가져온다. 한 사람의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편협하기 때문에 세상의 아주 일부분 밖에는 볼 수 없다. 인간은 두 가지 종교적 신념을 동시에 믿거나, 일곱 가지 장르의 음악에 동시에 매혹될 수 없는 것이다. 친구와 동료도 세상의 다른 조각들을 건네주지만, 연인과 배우자가 가져오는 건 온전한 세계의 반쪽에 가깝다. 그건 너무 커다랗고 완결되어 있어서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녀가 가져오는 세상 때문에 나는 조금 더 다양하고 조금 덜 편협한 인간이 된다.
실연은 그래서 그 세상 하나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연인이 사라진 마음의 풍경은 그래서 을씨년스럽지만 그래도 그 밀물이 남기고 거대한 빈 공간에는 조개껍질 같은 흔적들이 남는다. 나는 혼자 그 식당을 다시 찾아가 보기도 하고, 선댄스의 감독이 마침내 헐리웃에서 장편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도 한다. 그런 것을 이따금 발견하고 주워 들여다보는 것은 다분히 실없지만, 아름다운 짓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그러한 실연이 없는 관계-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면 그 모든 절반의 세계는 점차 단단히 나의 세계로 스며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건 굉장히 이상하고 기묘한 일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세계의 리스트에는 그녀가 가져온 좋은 것과 문제점 모두가 포함된다. 그건 혜택과 책임으로 복잡하게 얽힌 대차대조표라서 어차피 득실을 따지기가 어렵다.
세월이 감에 따라 그녀가 최초에 나에게 가져왔던 섬세한 풍경들의 윤곽, 디테일한 소품들은 생활이라는 것에 차차 -혹독히- 침식되겠지만, 그 기본적인 구성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여전히 나와 몹시 다르고, 다양해서- 이따금 경이로울 것이다.
한 사람이 오는 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오는 것,이라는 말을 웬 광고판에서 본 적이 있다. 왜 아침에 그 문구가 생각났을까. 아무튼 사람을, 연인을 곁에 두기로 하는 것은 그래서, 무척이나 거대한 결심이다. (유호진)
본성을 바꾸는 사람은 현재를 사는 사람이다.
사랑하지 않아도
주말에 누구를 만나지 않아도
하루종일 연락하며 지내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고 편안하고 여유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사회가 요구하는, 일상 속 여러 매체들이 늘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만나고 사랑하고 소통하고 이래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입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도 나는 나로서 완전하다.
내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일에 몰두하는 연습을 한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의 무례함에 선을 긋고,
나의 노력과 수고를 모르는 척하는 뻔뻔한 누군가에게 정정당당하게 요구하고,
나를 좋은 친구라고 말하는 친구의 나쁜 습관을 눈 감아 주는 일은 이제 없다.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나를 소중히 대하는 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