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사 인용 식탁에 둘러앉아 매일 밥을 먹었다. ...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욕실 유리컵에 꽂힌 세 개의 칫솔과 빨래 건조대에 널린 각기 다른 크기의 양말, 앙증맞는 유아용 변기 커버를 보며 그렇게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이고 사건임을 알았다. ... 영우는 거기서 젓가락질을 배우고, 음식을 흘리고, 떼스고, 의자 아래로 기어들어가고, 울고, 종알종알 분홍 혀를 놀려 어여쁜 헛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거기 사 인용 식탁에서. (p. 20) 가끔은 사람들이 '시간'이라 부르는 뭔가가 '빨리 감기' 한 필름마냥 스쳐가는 기분이 들었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 한. 점점 그 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 우리 가족을 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 시간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듯했다. (p. 21) 결국 그렇게 도착한 곳이 '여기였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 비로소 정착했다고 안심한 곳이 허공이었구나 싶었다. (p. 33)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p. 115) 사진 찍을 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무척 평범한 사람,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그런 순간과 만났을 땐 잘 알아보고, 한곳에 붙박아둬야 한다는 걸 알 정도로... 나이든 사람 말이다. ... 그때마다 우리는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는 노랫말마냥 정확하게 멈췄다. 과거가 될 만반의 자세,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러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 뒤 사진기를 보고 웃었다. (p. 150) 오래된 사진 속의 나는 언제나 어색한 듯 자명하게 서 있다. 정확히 어떤 색이라 불러야 할지 모를, 1970년대 때깔 혹은 낙관적 파랑을 등에 인 채. 코닥산 명도, 후지식 채도에 안겨 있다. 어느 때는 너무 흐릿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누군가를 향해, 그 누군가가 원한 미래를 향해 해상도 낮은 미소를 짓고 있다. ... 우리가 뭘 모른다 할때 대체로 그건 뭘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뜻과 같으니까. 무언가 주자마자 앗아가는 건 사진이 늘 해온 일 중 하나이니까. 그러니 오래전, 어머니가 손에 묵직한 사진기를 든 채 나를 부른 소리, 삶에 대한 기대와 긍지를 담아 외친 "정우야"라는 말은, 그 이상하고 찌르르한 느낌, 언젠가 만나게 될, 당장은 뭐라 일러야 할 지 모르는 상실의 이름을 미리 불러 세우는 소리였는지 몰랐다. (p. 151)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고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p. 173)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림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p. 182) 네 안의 어떤 것이 너를 그렇게 만드는 걸까. 그중 내가 준 것도 있을까. 만일 그게 내가 준 것도 네가 처음부터 가진 것도 아니라면 그건 어디에서 온 걸까? (p. 196) 몸에 너무 많은 '소셜 social'이 꽂혀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온갖 평판과 해명, 친밀과 초조, 시기와 미소가 공존하는 '사회'와 이십사 시간 내내 연결돼 있는 듯해. (p. 212)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p. 213) 해마다 아이 생일 초를 밝힐 때면 기쁘고 엄숙한 마음이 든다. 긴 하루가 모인 한 해, 한 해가 쌓인 인생이 얼마나 고되고 귀한 건지 알아서. (p. 215)
바깥은 여름, 김애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