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글을 읽는 사람이다. 글을 읽는다는 것, 그 능력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독자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같은 반 친구 K는 전국 상위 1퍼센트에 드는 수재였다. 녀석이 쉬는 시간이 되면 국어 기출문제를 들고 와서 내게 묻는 것이었다. "이 예문에서 밑줄 친 문장의 뜻이 뭐냐?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도대체 녀석이 이해가 안 됐다. 나보다 똑똑하고 일등이면서 왜 이런 문장의 뜻을 모르겠다고 하는 거지? 이래서 신은 공평하다고 하는 건가 싶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별 어려움 없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어마어마한 특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독서는 유난스러운 일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도 아니다.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는 시간이 부족하거나 다른 재밋거리에 빠져서이지 읽을 줄 몰라서가 아니다. 그런데 사실 독서는 인간의 노력으로 얻게 된 엄청난 행운이다.
인간의 독서 행위를 뇌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저명한 인지신경과학자 매리언 울프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난독증 상태로 태어난다. 즉 처음부터 책을 읽을 수 있는 뇌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기적 유전자가 다른 것들은 유전 프로그램을 통해 자손에게 잘 전해주지만, 독서 능력만큼은 직접 전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매리언 울프는 독서를 이렇게 정의 내린다.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인류의 기적적인 발명이다." 뇌가 독서하는 방법을 배우면 독서하는 뇌가 발달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뇌의 독서 회로에 따라 자연스럽게 반복적인 독서 행위가 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파블로 피카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창조적인 천재들이 난독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들이 난독증을 극복하려고 어떻게 뇌를 창조적으로 발달시켰을지, 그 과정에 어떤 천재적인 작업들이 수행되었을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난독증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의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를 못 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가 의지박약하거나 노력이 부족하거나 산만하기 때문이 아닐 수 있다. 아직 독서 회로를 만들어내지 못한, 난독 상태일 수도 있는 것이다. 윽박지르기보다 기다려주고 살펴봐 줘야 한다.
사색이 사라진 시대의 성인들에게서도 나는 이런 증상을 가끔씩 본다. 아주 쉬운 설명문을 제시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습관적인 읽기로 오독해버린다. 이것이 일종의 병증이라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나는 오랫동안 그들의 지능을 오해하며 지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능력을 갖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읽는 뇌가 다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지금 당신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면, 당신은 책을 읽기 위해 부단히 책 읽는 뇌를 발달시켜온 사람이다. 경의를 표한다. 그러니 그 특별한 능력을 자주 애용하기를 바란다. 당신이 독서하는 모습을 누군가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그 능력을 갖지 못해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책이 그냥 책이 아니듯이 독자도 아무나 독자가 아니다. 우리, 읽을 수 있는 축복을 헛되이 하지 말자.
/ 림태주,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