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적인 나의 상태를 글로 가두어버리고 나면 금방 지나갈 바람결을 핑계 삼아 오래도록 그렇게 살아버릴 것 같았다. 때문에 잠시동안은 글을 쓰기를 꺼렸지만, 그래도 왠지 오늘은 써도 될 것 같아서 쓰는 이야기. 이런 증상이 있으니 우울증이었다, 이런 증상을 보니 번아웃이다, 투의 글을 (내가 쓰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잠시 그랬을 뿐인거지, 내가 늘 그런 아이는 아니니까.
아무튼 꽤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맹세코, 삶의 질을 높이는 어떤 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늘 설거지가 밀려있고 청소기는 일주일에 한 번도 돌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환기를 하러 가는 그 발걸음이 귀찮아 집은 늘 퀴퀴했고, 빨랫감은 쌓이다 쌓이다 빨래 바구니가 버티지 못할 때에야 한 번씩 돌렸다. 잘 챙겨먹는 척 했지만 무엇을 먹든 먹자마자 소화제를 들이붓는 유구한 전통이 다시 찾아와 먹는 즐거움도 느끼기 힘들었다. 손에서 휴대폰을 뗄 수가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폰을 집어 들고 무엇이든 틀어야했다. 이를 닦을 때에도, 심지어 머리를 감느라 보지 못할 때에도 소리로라도 들어야 했다. 아무 일도 안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제일 싫었던 건 적막이었던 건지, 단 한 초라도 조용한 집을 견딜 수 없었다.
밥 먹는 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곧 토해내거나 억지로 밀어 넘길게 뻔한데 맛을 느끼는 건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먹는 것은 그저 또 하나의 일이었고, 내 눈과 귀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를 영상에 가 있었다. 당장 내일만 되더라도 뭘 봤던 건지 기억도 없지만, 그래도 그냥 봤다. 티비를 틀어놔도 결국 티비 소리는 배경음이 된 채 휴대폰에 의미 없는 스크롤질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냥 그 정도의 힘만 남아 있었다.
유일하게 놓지 않았던 것은 일이었다.
일은 했다. 꽤 열심히. 그러니 더 대비가 심해져만 갔다. 내 일상은 철저히 파괴당하고 있는데, 나는 무슨 의미로 일을 대하고 있는 건가. 뭔데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 일을 하면서 얻는 성취가 그나마 내 악취를 감춰주고 있다고 생각했나. 아무튼 이건 다 지나온 나의 추측이고, 그때의 나는 생각이랄 게 없이 일을 했다. 가장 몰두할 수 있는 것에 몰두했다. 일을 다 하고 나면, 정말 배터리 꺼진 장난감처럼 어딘가에 푹 퍼져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열 번도 더 했을 청소를 시작도 못한 채로 쇼파에 누워 이 시간이 허무하지 않은 척 하느라 부지런히 휴대폰을 뒤져가며 그렇게 허투루 보냈다.
누구보다 운동을 해야 하는 몸인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럴 힘이 없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나보다. 여기서 말하는 힘은 신체적인 힘일 수도 있지만, 일단 나는 심리적인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표면적으론 달라진 게 없는데, 일단 어제오늘은 3km를 뛰고 왔으니까.
몇 년 전 일에 대한 슬럼프가 왔을 때가 있었다.
그땐 일에 대한 권태가 일상까지 스며들었고, 그 권태로움에 만취되어 있다 주거/주위 환경 등 주변을 바꾸는 방법으로 떨쳐냈었다. 내가 일명 코태기라고 부르던 그 시기보다 이번이 좀 더 당황스러웠던 이유는 일에는 별지장이 없던 탓이다. 일이 안 되거나 하기 싫었다면 더 빨리 눈치채고 무엇이든 해봤을 텐데.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니 하루의 전부를 일에 투자를 할 때도 있었다. 나쁘지 않은 몰입이었고, 그건 계속 나에게 일상을 대충 보내도 되는 근거가 되어줬다.
그리고 이 사태는 잠시 동안의 일이 아니라 거의 작년 초부터 올해 초까지 일 년이 넘게 차지하고 있던 사건이었으므로, 갑작스러운 계기를 통해 풀려난 것도 아니었다. 조용히 천천히, 내가 비정상적으로 일을 하는 시간을 줄이고 나를 다잡는 시간을 늘렸을 뿐이었다. 나쁜 습관은 하루 만에도 만들어지던데, 좋은 습관은 왜 이리도 길들이기가 어려운지. 아침에 눈뜨자마자 일어나는 것, 밥 한 숟갈에 다섯 번 이상은 꼭 씹어먹는 것, 누가 쫓아오지 않으니 급하게 먹지 않는 것, 저녁시간이 되면 컴퓨터 앞을 떠나는 것, 의미없이 티비를 틀어두지 않는 것, 씻을 땐 씻기만 하는 것, 영양제를 매일 챙겨 먹는 것, 눈 딱 감고 집 밖을 나가는 것. 남들은 어쩌면 의식 없이도 할 일들을 나는 부단히도 노력하며 습관으로 만드느라 곤욕을 치루고 있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는 저것들을 행할 에너지가 생겼다.
그리고
늘 좋았던 적도, 늘 나빴던 적도 없었지만. 나로서는 힘들다고 툴툴 대거나 틈만 나면 펑펑 우는 나보다 그저 시간을 축내며 고요히 가라앉는 내가 가장 두려웠다. 밖에다 티를 내고 엉엉 울던 나는 살 의지가 있어 보였는데, 지난날의 나는 참으로 차분하게 썩어가는 기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