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기일
“오늘 할머니 기일이다. 제사 지내고 다시 속초로 들어가는 길이다.” 아버지가 음성 메시지를 보낸 건 밤 9시쯤이었다. 한국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을 터였다. 목소리가 눈물을 애써 가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득하게 잊고 있었다. 기념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변명이 자위도 되지 않을 때. 담담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벌써 12월 3일이네요.”
3년 전 12월 2일엔 방콕에 있었다. 얼굴을 시꺼멓게 태우고 인천에 도착해서 어머니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가 많이 위독하시대.” 그 길로 강릉 가는 버스에 올랐다. 많은 죽음이 그러하듯 결국 할머니도 그 밤을 넘기지 못하셨다.
장례를 치르는 3일은 지옥 같았다. 살을 비비고, 냄새를 맡고, 장난을 주고받던 할머니는 사진으로만 남아있었다. 사진도 할머니는 아니었다. 죽음을 위해 꾸며진 할머니. 할머니 얼굴과 향불을 앞에 두고 사람들은 잔인하고 능청스런 연극을 시작했다. 적당한 배역을 찾지 못한 몇몇은 금방 돌아갔다.
발인하는 날엔 온 우주가 숨을 참았다. 별들의 절규는 귓속에서 매미처럼 울었다. 할머니의 집이 될 나무 상자는 몸에서 조금도 남지 않았다. 답답하실 텐데. 분명 숨이 빠져나간 몸이었다. 어김없이 찾아온 세상과의 마지막 순간. 온 가족이 할머니에게 매달린 동안에도, 나는 식어버린 손의 감촉이 두려워 잡지 못했다. 그게 지금도 후회가 될 줄 그때 알았더라면. 장의사가 할머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붕대로 꽁꽁 싸맸다. 남은 건 할머니 몸만한 형체뿐이었다. 고모는 할머니가 퇴원하면 드릴 꽃신을 직접 신겨드렸다. 흙 대신 구름을 밟게 되겠지.
그날이 잊히는 데 3년도 걸리지 않은 걸 생각하면 아찔하다. 할머니 무덤을 꾹꾹 눌러 밟던 날. 아버지가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던 날. 사촌 형이 큰아버지 뒤에서 담배를 태우던 날이 이렇게 가까운데. 돌아보면 한 자도 안 되는 거리가 다시 요원하다. 내일이면 3년은 다른 행성처럼 멀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 할머니를 지켜줄 사람도 이 별을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서, 우리는 분주한 생의 순간에도 가끔씩 뒤를 돌아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멀어져 가는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만약 그렇다면 가까이 잡아당기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