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안은 김환기가 죽고난 이후 흩어진 그의 그림을 모아 환기미술관을 건립한다. 그것이 여성으로서 남성에 대한 헌신을 의미하는가?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김환기가 파리로 향하기 한 달 전 먼저 그곳으로 떠나 그의 초석을 다져놓은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향안은 김환기의 무명시절 그의 예술성을 알아보았고, 그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모아 만든 이름'으로 불렀고, 그의 남은 인생을 그녀의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였다. 그녀는 그에게 있어 모범적인 선생이었고, 어머니였고, 친구였고, 동반자였으며,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김환기의 생에 가려진 비운의 여성 문인이 아닌 ‘김환기의 생'이라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킨 장본인인 것이다. 그녀가 선택하고 사랑했던 남자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건설하고 발전시켰다가 그가 죽어서도 예술가로서 조명이 되도록 만든 여인, 그것은 한 사람을 향한 헌신이 아닌 위대함에 대한 열정이었다.
“..다 서울로 보내 버려서 시원한 기분이다. 무사히 잘 미술관 집으로 들어가겠지. 작품들이 제 나라로 돌아갔으니 그 다음의 역사는 민족의 운명과 같이 할 것이다. 또 정리할 일들이 한없이 남아 있다. 이제는 쉬어가면서 해도 된다.”
1992년 9월 15일 일기, 월하의 마음. p.333
그렇게 해서 1992년 서울 부암동에 개관한 환기미술관에는 이런 글을 남겼다. ‘작가의 투명하고 격조 높은 조형 언어는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와 성좌(星座)의 영롱함으로 빛날 것이다. 사람은 가고 예술은 여기 남다.’ 벽에 이렇게도 새겼다. ‘내가 죽는다고 해서 내 영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 영혼은 환기의 영혼하고 같이 미술관을 지킬 것이다.’
내가 사랑한 남자가 나의 품 속에서 그의 내재된 생명력을 표출하도록 조력하는 것. 이것은 오직 여성만이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조력이라는 것은 그 중 더욱 여력이 있는 이가 하는 것이어서 나는 그보다 앞서있어야 하며, 앞서있다는 것은 그가 배제된 영역에서도 나의 가치가 뚜렷하게 결정되어야 하고, 그 가치는 전적으로 나 자신으로부터 생산된다. 김향안 여사의 생에 인간 김향안과 작가로서의 김향안, 아내로서의 김향안 그 각각의 연구가 이루어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때문에 그녀의 사랑은 감성이 아닌 지성으로 하는 것이었을 테다. 여성은 나에 대한 통찰력과 세상에 대한 뛰어난 기획력으로 그 여성성을 잘 발휘해낼 수가 있다. 이것이 단지 여성보다 우월한 남성의 삶을 빌려서 이루어내는 여성성의 한계라고 받아들여진다면 유감스러운 일이다. 나의 요지는 어디까지나 그들(여성과 남성)이 각각 그리고 조화롭게 하는 일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점보다는 서로 다른 점을 끌어내고 강화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우리는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유사해서, 만약 어떤 탐험가가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다른 나뭇가지 사이로 다른 하늘을 바라보는 다른 성에 대해 말을 전해 준다면, 인류에게 그보다 더 위대한 공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두 가지 힘, 즉 남성의 힘과 여성의 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성의 뇌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뇌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편안한 상태가 되는 것은 두 힘이 조화롭게, 정신적으로 협력하면서 지낼 때입니다. 남성의 경우라면, 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부분이 효력을 나타내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여성의 경우 여성 안에 있는 남성적인 부분과 소통해야만 합니다. 콜리지가 위대한 마음은 양성적이라고 말했을 때 뜻한 바는 아마도 이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마음이 완전히 풍부해지고, 그 모든 능력을 사용하는 순간은 바로 이러한 융합이 일어날 때 입니다. 방해 없이 감정을 전달할 수 있으며, 선천적으로 창조력이 있고, 열렬하며 분열되지 않은 그런 마음임을 말이지요.
그 이후 우리는 자주 만나게 되었고 그러는 동안에 서로의 지식과 이해와 감정에 있어 공감과 공명으로 일치해 갔으며 마침내 그는 자기한테 시집와 주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었다. 결합의 모토는 곱게 살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릅답게 살자고 맹세했다. 우리는 이미 성년기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의사와 능력으로 이상적인 생활을 설계해서 실행해 가자고 했다. 우리는 애정과 신뢰와 존의로 뭉쳐 용기로서 주위의 장애물을 물리치며 살아왔다.
제가 20대 새 세대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부디 낡은 세대들의 경우처럼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들고 나오지 말라는 것. 당당히 두뇌적인 실력으로 등장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기우인 것이 새 세대는 이미 각 부문으로 우수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응당 새 세대는 우수한 두뇌적인 실력으로 나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부디 건강하고, 부디 서둘지 말고, 부디 비굴한 생각 말고, 부디 초조하지 말고, 부디 격(激)하지 말고, 부디 순간에 취하지 말고, 부디 선악(善惡)에 매섭고- 나는 이러한 고국의 부탁을 마음에 되뇌며 샹젤리제 대로를 다시 활보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