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에서 만난 갈색 머리가 예쁜 그 애는 아홉수에 대해 계속 얘기했다. 무당에게 운세를 물었더니 물가에 가지 말고 아홉수를 조심하랬다고. 내가 아는 똑똑한 여자애들이 점을 보러 다닐 때마다 의아한 마음과 “그런 걸 믿니?” 하는 무례한 질문이 떠오르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늘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관심도 없는 타인의 이직운, 연애운을 듣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어김없이 무료 운세 사이트에 접속하고 만다. 행여 미세한 차이로 결과가 달라질까 싶어 태어난 날이 윤달인지 평달인지 세세하게 체크한다. 엄마에게 전화까지 걸어 태어난 시간의 분까지 신중히 입력한 뒤 운세 보기 버튼을 누르고 있자니 실소가 나왔다. “겨울내 얼었던 강물이 풀리듯 점차 좋아지는 형상입니다. 그동안 불안정하게 흘러 왔던 운기의 흐름이 바로 잡히게 될 것입니다….” 애저녁에 무당집을 드나들며 방향과 운을 점쳤다면 좀 더 순탄한 인생이었을까? 내로라하는 기숙형 사립학교에 입학했지만 난다긴다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공부로 자의식 충전을 할 수 없어 IT회사를 창업. 너무 어린 나이에 돈 돈 하다 보니 현실에 질려 대학은 예술 전공으로 진학. 취업을 멸시하는 학부 분위기에 어영부영 준비 없이 졸업해 아트디렉터가 되겠다며 작품 몇 편을 찍었(놀았)다. 결국 1년 반 뒤에 금융권 대기업 브랜드 전략팀에 입사했으나 고연봉에 좋아하던 것도 잠시, 관심도 없던 헬스케어 서비스 팀으로 발령나 모바일 서비스 기획자 비스무리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 이것이 스물아홉의 이윤경이다. “제아무리 천운을 타고났다고 해도 그 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지나간 행운들을 헤아리다 보면 어김없이 대학교 1학년 겨울의 네덜란드가 떠오른다. 조간신문 별자리 운세의 행운의 색으로 그날 입을 옷 색깔을 결정하던 하숙집 주인과 추운 방. 그해 겨울은 유독 추웠는데 낡은 난로 때문인지 아니면 같은 방 첫사랑 그 애가 시종일관 내게 냉랭했기 때문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그 애는 반하지 않기가 힘들 정도로 멋스러운 사람이었다. 단정한 감색 코듀로이 재킷에 탁한 오렌지 컬러의 장목 양말, 얇은 캐시미어 머플러에 고흐박물관 니트백을 들고 그 안에는 늘 잘 관리된 만년필과 인도인이 만든 수제 가죽 수첩을 들고 다니는 그런 남자였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취향이 사람을 신비롭고 우아하게 만든다는 걸 그에게 배웠다. 나만의 취향이 필요하다는 것과 취향이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가 가르쳐줬다. 한국에 돌아와 휘리릭 읽는 취향 뉴스레터 <취리릭>을 1년 반 넘게 운영하며 총 여든 네 편의 소식지를 보냈다. 나는 수석 에디터로 일했고 꽤 많은 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종종 내가 쓴 카피나 취향을 칭찬하는 글들이 블로그에 올라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글로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은 감히 꾸지 않았다. “기회를 잡는 것은 모두 당신의 몫. 지금까지 미뤄왔던 일이나, 주저하고 실행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면 실천에 옮겨보세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해가 바뀌고 비로소 아홉수다. 아홉수에는 특별히 더 몸을 사려야 한다는데, 우리는 대체 뭘 더 얼마나 사리며 살아야 하는걸까? 세상은 늘 조심하라고 속삭인다. 그 속삭임은 너무도 가까워서 가족과 친구, 연인 같은 내밀한 인간관계를 통해 전해져온다. 현실과 동떨어진 주술적인 운세와 비과학적인 미신들만이 무모한 용기를 주는 느낌이다. 19살, 조심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가리라는 대담한 포부를 캐리어에 넣어 기숙사를 떠났다. 29살 우리의 캐리어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
그것이 볼드함이었으면 좋겠다. 조심성 대신 거침없음을, 의심 대신 믿음을 개켜 넣고 싶다. 글을 쓰고 싶으면 쓰고. 그걸로 밥을 먹고 살고 싶으면 도전하고. 안되면 다시 두드리고. 그렇게 살면 그만이지 않은가. 적어도 오늘의 운세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