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에서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의욕과 열정을 가진, 다른 말로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이런 문제, 흐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아마도 대부분 가족일)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평가, 판단하는 기준을 어렸을 때부터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형성된 어떤 기준은 자신이 평가하는 자신의 현재 모습과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이 “기준”은 착하다, 겸손하다, 성실하다 등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부터 외모의 어떤 부분, 키, 지능, 재능 등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이런 기준은 대체로 자신이 자신을 돌아볼 때, 또는 다른 사람들을 내 생각으로 평가할 때 “사람이 최소한..”, “아무리 그래도 그건 최소한…”이라는 식으로 표현되기 쉽다. 이런 기준은 과도할 정도로 엄격할 수도 있다.
2. 스스로의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자신이 부족하다, 잘못되었다, 기준에 맞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즉,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식, 마음속의 어떤 결핍이 자기 발전 노력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준에 맞는 자신의 모습과,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현재 모습간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도저히 좁힐 엄두조차 나지 않으면 자기 발전의 노력을 아예 하지 못하거나 충동적이 되고, 무모하거나 비현실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기 쉽다. 즉, 자기발전의 노력이 성공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진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매우 의욕적이고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
3. 자기 발전의 노력이 (주변의 도움과 지지를 적절히 얻어서, 또는 운이 좋아서..) 성공해, 자신이 “최소한”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아무 의심없이 스스로 평가하고 믿을 수 있게 되면 내적 갈등이 많이 해소되고 편안한 상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반복한다면 자기 발전의 노력은 오히려 점점 더 한 방을 노리는 식으로 무모해지거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불안이 증대되고 강박적이 되기 쉽다.
4.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 가면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가만히 있거나 여유를 갖는 것에 대해 불편해 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이 된다. 정작 좋은 기회가 주어져도 무리한 계획을 세우기 쉽고, 자신을 학대하는 수준으로 극한까지 무리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함, 부정적인 생각에 지쳐 자포자기, 도피하거나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쉽다.
5. 결과적으로 자신이 “최소한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습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 셈이 되고, 처음에는 실패의 원인을 상황 탓이나 남 탓, 운명의 탓으로 하곤 하지만 그조차 늘 여의치는 않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면 애초에 알던 자신의 부족함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 (의욕 저하, 도피심리 등)에 매우 당황하고 불안해 하게 된다. 자기 비하와 부정이 심화될 수 있고, 우울 성향이 나타나기 쉬워진다.
6. 자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고 무가치하다고 느껴 타인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나는 사랑받을, 인정받을 조건이 없는데…”라는 식의 생각), 자신을 과장하며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꾸미는 노력을 하기도 하며, 타인이나 세상의 오류나 잘못, 부정에 대해 공격적이 되기 쉽다. 한 마디로, 심한 내적 갈등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것을 잘 통제하고나 해결하지 못해 자신과 주변의 관계 속에서 계속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기 쉽다.
보편적 인간에 대한 관찰 같지만, 이게 바로 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관찰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 자신이니 말이다.
나는 늘 내적 갈등이 심했고, 이것은 늘 합리적이거나 옳거나, 적당하지 않았다.
나는 늘 불안했고, 공허했고, 강박적이었으며,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에게 매정했다.
그리고 나를 “기준에 맞는 사람”, “긍정받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무척 자신을 몰아붙이고 학대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20대 전체를 거치면서 대 실패만을 남겼고, 내가 만족스러워할래야 할 수 없는 내 모습을 그저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어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20대 후반의 일이다.
제너럴닥터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은 다 이런 내 모습에서부터 출발한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나를 자격 미달로 평가하는 어떤 “기준”을 극복할 수 없었다.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은, 이성적으로만 따져 본다면 애초에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구원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즉, 내가 나를 부정하도록 만드는, 세상과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나 가치관을 부정하거나, 그에 부합하는 모습을 갖추려 하기보다는 설령 정말 “거지같더라도” 그 모습을 일단 그대로 받아들인 다음, 선택을 했다.
나는 결국 누군가의 인정과 긍정을 필요로 하는 것 뿐이다. 내가 믿을 수 밖에 없는 누군가에 의해 “너는 괜찮다, 그대로 살아 있는 것만으로 좋다”는 평가를 얻고자 늘 애쓰고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 “누군가”는 가족일 수도, 사랑하는 사람일수도, 신적 존재일수도,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그런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
답없는 노력을 하며 나와 주변을 괴롭히고 그런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하루 하루를 애닲게 살아가지는 말자고, 대신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 모습을 긍정해 주는 사람들로 가득한 나만의 세상을 만들자고.
그래서 나는 나를 좋아하게 되는 게 인생 최대의 목표이다. 솔직히는 더 이상 싫어하지 않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적인 의료,
창의적인 시도,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일,
어쩌면 애초에 나에게 그런 건 무엇이 되었든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미 내가 나를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된 시점에서 내가 가진 것, 잃은 것,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의 종합적 비교 판단 결과가 나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용기도, 선의도, 지혜도 아닌
그저 살아남기 위한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잔료시간에 저 그림을 그리면서, 선택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면서 내 지금의 모습을 거듭 돌아본다.
나는 이미 목표했던 것을 이루었다.
나는 참 운이 좋구나.
다행이다, 정말로.
그래서 앞으로의 일들은 내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라기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세상을 지키고 넓혀 나가기 위한 노력이 될 것이다.
이미 그런 노력은 시작되었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지만
새 제닥은,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 모두 정말 재미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예전의 나처럼 자신을 싫어하지 않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주고 싶다.
당신은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고.
당신이 맞추어 내야만 하는 기준은, 사실 그렇게 안 해도 되는 상대적인 것들인데, 불행히도 이미 당신은 그것들을 절대라고 받아들인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절대적인 존재인 당신을 상대적인 기준에 맞추려고 뒤틀고 괴롭히지 않아도 된다고.
용기를 낼 필요도 없고,
조건을 갖출 필요도 없다고.
단지 선택하고, 행동하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