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지극히 주관적이라지만 타협할 수 없을 정도의 외설을 데려와 예술이라 운운하는건 도무지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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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지극히 주관적이라지만 타협할 수 없을 정도의 외설을 데려와 예술이라 운운하는건 도무지 참을 수 없다.
‘사랑이란 지성이다’ 지성으로 이해하고, 지성으로 교류하며, 지성으로 믿어야 오래 갈 수 있습니다. 함께 성장해야 함부로 시들지 않습니다.
나의 성장이 그의 성장을 이끌고 그의 성장이 또 나를 성장하게 하면서 서로에게 점점 더 잘 맞는 반쪽이 되어가는 길.
소울메이트는 한순간 만나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소울메이트는 인연의 처음이 아니라 인연의 마지막에 말해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울메이트는, 사랑하여 노력하는 사람에게 허락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이란 함께 성장하는 일입니다.
/정현주
마지막인 것 처럼 낭만적으로
김이나는 “요즘 내가 느끼는 문화 중에 하나는 젊은 친구들이 진지함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모든 면에 있어서 적당하게 쿨하고, 특별히 튀는 게 없으면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진지한 것을 ‘오그라든다’ ‘중2병 같다’ 라는 식의 표현을 하는 것 같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김이나는 돌아보면 남들이 보면 찌질하다고 할 수 있는 흔적 때문에 작사가로 데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돌아보면 찌질 할 수 도 있지만, 나의 20대 초반 미니홈피에 음악과 유명한 음악인들에 대한 내 생각을 썼다. 그런데 김형석 작곡가가 그 글들을 보고 ‘글재간이 있는 것 같은데 작사가가 돼보는 건 어때?’라고 이야기 해줬고, 그것이 내가 작사가가 될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됐다. 남들이 봤을 땐 찌질한 글이었지만 성공한 누군가에게는 내 개성과 특징, 장점들을 증명해주는 재료가 되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이나는 본인이 가사를 쓴 곡을 예로 들며 “많은 이들이 이선희씨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가사를 좋아하는데 그 노래 가사에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대를 만나’라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감성적인 표현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오그라드는 중2병의 감성이 녹아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의 진지함을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20대는 찌질 해도 용서 받을 수 있는 시기다. 또래 사이에서 멋있어 보이려는 무언가에 갇혀서 자신만의 개성이 되는 재료들을 털어버리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사랑을 그만둔 것은 나의 애정과 신뢰가 그사람에겐 잘 깎인 연필이나 비싼 음식처럼 있으면 편리하지만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는 사치품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서였다. 내 감정이 타인에게 그리 무가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견뎌내기가 힘들어서였다.
소중한 사람에게 안일한 존재가 되는건 참 암담한 일이다. 익숙함과 안일함은 다르다. 익숙한 관계는 함께한 시간이 차곡히 쌓여 새로움 대신 편안함이 자리 잡아 보다 더 견고하지만 안일함 속에서 우리는 점차 그 관계의 가치를 잃어간다.
익숙함은 시간이 허락한 축복이지만 안일함은 시간에 속아 넘어가버린 저주일 뿐이다.
이젠 정말 상처받고 싶지 않다. 비슷한 온도를 가진 사람을 만나 오래 사랑하고 싶다.
마음이 젖은 날에는 간절한 듯 굴다가 괜찮아지면 버리는 사람. 되고 싶지 않다.
뭔가에서 손을 놓게 되는 시점은 단순히 힘들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점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게 사람이 됐든, 삶이 됐든.
종종 되새기는 문구.
"소중한 사람에게 화가 나 있을 때는 화가 나지 않은 척하지 마라. 괴롭지 않은 척하지 마라. 내가 화나 있고 괴롭다는 사실을 털어놓아라. 단, 차분하고도 사랑이 깃든 말투로 하라. -틱낫한,화"
저채도의 삶
나와 비슷한 또래(라고 추정되는) 여자들의 블로그를 염탐하면서 그들이 참 예쁘게 산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예쁜 것만 먹고, 예쁜 케이스에 든 화장품을 쓰고, 얇은 다리에 흰 운동화를 신고, 밝게 염색한 긴 머리를 가진 것 같다. 때때로 독특한 감각이나 취향을 드러내는 악세사리들과 화사하고 예쁜 표정의 셀카나 뒷모습이 찍힌 사진들이 가득해서 그들의 블로그는 참 채도가 높다. 휙휙 쓸어 내리며 몇 컷으로 구경하는 그들의 하루는 참 예쁘다.
그에 비해 나의 블로그는 무척 칙칙해 보인다. 사진이 적은 탓에 기본적으로 컬러감이 부족하기도 하고, 전혀 꾸미지 않은 흰 바탕에 검기만한 템플릿을 쓰고 있는 문제도 있는 것 같다. 한때는 크롬 같은 쨍하게 강조된 사진을 좋아했었는데 요즘 들어 톤에 대한 취향이 바뀌어 밝기나 노출을 어둡게 조정하고 콘트라스트나 세츄레이션도 낮추고 좀 쿨한 톤의 보정을 추구하고 있어서 인지 그렇지 않아도 저채도인 나의 블로그는 더욱 더 칙칙해 보인다. 어딘가, 예쁨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해서 예쁜 그들의 생활이 부럽다거나 따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추구하고 싶은 아름다움이 있고 그들은 그들이 추구하고 싶은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폄하받고 싶지 않은 만큼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전혀 폄하하고 싶지 않다. 그냥 참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들의 생활을 보면서 시각적으로 위로받는달까, 깨끗하고 여자다운 취향취향하게(이 이상의 단어를 생각해 내지 못하겠다) 꾸며진 그들의 책상을 보면서 이따금 열등감을 느낀달까, 그냥 거기까지다. 별세계 구경.
나는 내 나름대로의 저채도의 삶이 좋다. 편하고 헐렁한 무채색 옷이랑(와이드 팬츠가 유행하는 요즘은 참으로 살기가 좋다, 어딜가나 와이드 팬츠를 팔기 때문이다) 나의 회색 백팩이랑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고 다녀서 더러운 운동화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짧게 깎은 손톱, 커트 외의 다른 시술은 받은지 오래 된 아무 것도 묻히지 않은 짧은 머리카락. 무향의 드럭 스토어 스킨케어 제품들. 아기자기한 디테일 없는 주로 옥스퍼드나 모닝글로리의 공책으로 대신하는 나의 다이어리, 검은 볼펜, 뭐 그런것들.
이 화려하고 밝고 예쁜 세상에서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눈에 띄지도 않고 묻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눈에 띄기 위해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아니기 때문에 딱히 섭섭하지도 않다. 친구들은 내 선물을 고르는게 가장 어렵다고 한다. 내 취향이 뭔지는 알겠는데 그 취향을 만족시킬만한 무언가가 잘 없다고 했다. 아주 작은 디테일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대로 아웃 시키는 나의 까다로움 아닌 까다로움 때문에 무언가가 ‘내 물건'이 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아무튼, 별 볼일 없어보이는 나의 취향에도 꽤 까다로운 기준이 있고 내 딴에는 아주 어렵게 찾아내어 어렵게 추구하고 있는 저채도라는 뜻이다.
그냥 갑자기 든 생각이다. 한동안 글자만 빽빽한, 나의 무채도의 블로그를 정리하다가.
" 아주 작은 디테일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대로 아웃 시키는 나의 까다로움 아닌 까다로움 때문에 무언가가 ‘내 물건'이 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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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너무 아름다운 것만 좋아하는 건 아닐까. 아름답지 않은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위해서, 모든것에게서 오직 아름다움만을 탐하기 위해서 너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씩 아름답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추한 것을 추하다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본래 추한 모습으로 태어났다, 고 말하니 어딘가 슬퍼졌는데 나는 왜 그 사실에 슬퍼져야 하는가.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다, 안 괜찮고 괜찮은 말이 왜 아름답고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가. 그냥 저건 아름다운 것이고, 저건 추한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어떤 감정적 위로들은 자꾸, 필연적으로, 가치판단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 같다.
추한 것 앞에 당당해 지기로 했다. 그것에게서 마음을 당기는 연민 같은 것을 찾아 헤메지 않기로. 당당히 말하는 것이 그를 존중하는 일이다.
빈말
나는 빈말이 싫다. 어영부영한 마음들을 편한대로 반올림해서 기분이나, 분위기나 좋자고 하는 말들, 견딜 수가 없다. 견디기가 싫다. 남들이 하는 것에는 제법 내성이 생겼는데, 그 빈말이 나를 향한 것이거나, 내가 빈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재채기가 날 것 같다. 나의 빈말을 기다리는 상대방의 침묵과 할 말 없는 나의 침묵이 겹칠 때, 견디기 힘든 어색함이 찾아오는데 그럴땐 난 그런거 못한다고 고백해 버린다. 그리고 내 마음에 진짜가 생길 때 최선을 다해 표현 하려고 노력한다. 가까운 사람들은 그런 드문 나의 표현이 진짜라는 걸 알아서 크게 기뻐해준다. 이 드러운 성질머리 때문에 사람 사귀기 어렵다, 고 생각한적도 있었는데 어차피 그런 어영부영한 마음들, 어영부영한 말들로 쌓아 올린 관계가 얼마나 의미가 되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이대로 살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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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잘 하지 못하는 것들을 바라보다가 어루만지는 것을 좋아해. 네가 못하는 것들을 빠짐없이 찾아낼거야, 그것들을 내가 대신 해주는 것에 익숙해 졌으면 좋겠어. 내가 사라지면 문득 깨닫도록. 손톱을 깎거나 지갑에 쌓인 영수증을 버리다가 문득 깨달았으면 좋겠어. 내가 없어졌다는 걸. 그때의 옅은 그리움을 네가 느꼈으면 좋겠어.
나는 참 기억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 강렬하고 특징적인 이미지보다는 그렇게 커다란 줄 모르다가 어느날 갑자기 생각이 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기억이 되고 싶어. 너의 수첩 여기저기에 내 글씨들을 남겨둘거야. 그 글씨가 나의 것이라는 걸 깨달으면 너를 못견디게 하고 싶어. 내가 했던 말들을 타인에게 써먹으면서 비밀스런 기분에 빠졌으면 좋겠어. 그때에 네 곁에 있는 사람이 요즘들어 네가 멍하게 있는 때가 많다고 느꼈으면 좋겠어. 사실은 희뿌연 기억에 휩싸여 너의 마음이 빈틈 없었으면 좋겠어.
이런 말을 하면 넌 나를 애처로운 동물처럼 쓰다듬지. 맞아, 나는 제 상처도 핥을 줄 모르는 새끼의 오후같은, 이상한 평화를 건너고 있어.
불완전을 완전으로 만들면서, 사실은 더욱 불안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알아. 둘 뿐인 세계는 완성된 순진함으로, 아무것으로부터 해를 입지 않지만 그건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니야. 아무도 모르는 절벽에 집을 짓고 그 속에 들어가 빗장을 걸었지만 그곳은 어쩔 수 없이 영원한 절벽, 한 순간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허공일 뿐, 공기를 잣는 것 같아서 뜨게질을 싫어하는 것 같은 그런 공간. 거기에 우리가 있어. 거기에 우리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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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사랑을 겪은 뒤엔 누구나, 사랑이 마냥 달콤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지금 혀끝에 올려 놓은, 초콜릿 코팅 된 어떤 것의 실체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언젠가는 그것에서 쓴맛이 터져나올 것이란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순간이 두려워서 사랑을 피할만큼 철들고 싶지는 않다. 생각없고 무모해서 욕먹을 만큼, 손가락질 받을 만큼, 언제나 마음을 저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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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애인을 안고 있을 때, 두 사람에게 네 개의 팔은 불편하다. 하나를 잘라 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거침없이 한다. 남은 하나의 팔 때문에, 애인에게 더욱 가까이 갈 수가 없어서 무척 불온전한 기분에 빠진다. 너와 있으면 팔 하나쯤 없어도 될 것 같아, 그리곤 나를 활짝 열어서, 이제 막 태어나 뜨거운 별 같은 너를 안고, 그런 너를 완벽히 안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바다만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함께 가고 싶은 곳들의 숫자를 헤고 있으면 우리는 어느새 몸을 맞대고 잠드는 가축의 무리처럼 잠들고, 슬프고 무서운 꿈에서 깨어나도 혼자가 아니다. 애인과 나는 밤새 서로의 외로움을 지키고 그 영혼이 어둠을 혼자 걷지 않도록 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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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 속 내 애인들은 마구 뒤엉켜 있다. 그를 만나고 있을 때 쓴 것도 있고 그와 헤어지고 한참 뒤에 쓴 것도 있다. 이 공간을 몇 년 간 유지해 오는 동안 그 이름이 몇 번 바뀌기도 하였다. 가끔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지울 때는 있지만 단지 그와 헤어졌다는 이유로 지우지는 않는다. 지금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때의 내가 사랑했었던 사실이 모두 아닌 게 될 수는 없으니까. 가장 더웠던 때는 더웠던 곳에 남겨둔다. 마치 이국의 섬으로 휴가를 다녀 온 기억처럼 그곳은 늘 덥고 따스한 것이어도 괜찮다. 이곳은 이제 겨울이 불어닥쳤어도 그 때를 뜨거운 여름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그를 사랑하면서, 나는 한 때 그토록 반짝였는데 재해가 할퀴고 간 표정이 그 연애의 첫장면이 되는 건 싫다. 괴로웠던 끝의 잔상만이 나의 한 시대가 된다는 것은 억울하다.
때로는 만나 온 애인들의 인상이 마음대로 뒤섞인 것도 있다. 더러는 정확히 누구를 겨냥해 썼는지 모호하다. 그건 그를 위한 기록이 아니라 철저히 나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대상이 누구였는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열렬했던 마음의 상태, 늘 타들어 갈 것 갈증과 희열을 보존 해 둘 필요가 느껴졌다. 희부연 덩어리가 되어 늘 내 마음을 떠 다니는 뮤즈들, 그 때 쓴 것을 오랜만에 읽을 때 그를 이토록 사랑했던 내게 놀랄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해낸 내가 기특하다.
지금도 연애를 한다. 뭔가 지금의 연애에 관하여는 좀 다른 방법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와 통화가 끝날 때 마다 메모를 한다. 상황이 허락하면 통화를 하면서 노트를 펴 두고 우리가 주고 받는 단어들을 되는대로 옮겨 본다. 공책 모서리에 기하학적인 무늬들을 그리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단에어 동그라미를 치고 별을 그리고 여러번 반복해서 적기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막상 입으로 나오지 않을 땐 그것도 적어 둔다. 전혀 두서 없는 나열에 불과한 낙서들이다. 그냥 마구 갈겨 둔다. 언젠가, 우리가 어디쯤인지 도저히 알 수 없어 헤매게 되었을 때 남겨둔 과거의 발현들이 무엇이든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지나간 애정이 가득한 글들을 보고 있으면 불멸의 공간에 갇혀서 영원히 춤추게 되어버린 화염같다. 거기서, 그는 영영 강렬하고 뜨거울 수 밖에 없다. 아름답지만 만져 볼 수는 없다. 좀, 잔인하거나 이상한 추억의 방식인가. 나는 우리가 우리로써 사랑했던 날들을 내내 사랑한다. 그 예뻐서 가여워진 것들이 고아처럼 버려지는 건 견딜 수가 없다.
어떤 감정은 소리도 없이 어떤 예감도 징조도 없이 가장 중심부터 삭아져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감정이라는 것은 그 껍데기에서부터 가장 단단해져 들어오는 것이어서 가장 연약한 속이 어떻게 물러지고 상해가도 티가 나지 않는다. 매일 매일 감정의 표면을 닦아 윤을 내고 그것의 반짝임에 입을 맞추는 동안에도 눈치를 채기가 힘들다. 그래서 감정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는 어떤 수를 써도 재건 할 수 없게 된다. 남은 표면 한겹으로 버텨내기에 감정이 견뎌내야 하는 자극과 충격들은 그 강도는 얕지만 집요하고 계속적이다. 고도로 반복적이다. 그렇게 껍데기에 크랙이 생기는 순간 삭아 무너진 감정이 엄청난 악취를 내며 쏟아지기 시작한다. 대게 그것이 끝물 감정의 싸이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