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25.
앞으로 10년.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 10년만 자꾸 되뇐다. 그게 유일한 희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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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5.
앞으로 10년.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 10년만 자꾸 되뇐다. 그게 유일한 희망처럼.
빌 헤이스 - 『별빛이 떠난 거리』
2015년 8월 여든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올리버는 그 몇 달 전 어느 저녁에 자신의 노트에서 고개를 들고는-이 아파트에서, 이 책상에 앉아 있다가-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쓰는 거야-지적으로, 창조적으로, 비판적으로, 생각을 불러일으키도록-지금 이 시대에 사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해서.
우울증에 대해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사항은 우울증을 ‘하나의 우울함’으로, 마치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인 것으로 다루지 말라는 것이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어쩌면 평생-에 걸쳐 형성된 많은 부분들-비탄, 트라우마, 학대, 고립, 거부, 억울함, 돈 걱정, 경력 후퇴 등등이 들어 있다.
우리는 그날 밤 완전히 폭발했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됐을 땐 달콤함과 더불어 씁쓸한 무언가가 남았고, 동시에 다른 무언가는 빠져 있었다. 걱정 없음, 태평함이라는 것. 제시를 만나고 만지고 그와 함께하는 일 모두 당분간은 그날이 마지막이 되리라는 걸 나는 알았다. 그와 함께하는 것, 이 이상한 시절, 우리의 두 몸이 얽히는 그 순간 우리의 삶이 ‘함께하는 것’이라는 문장의 가장 깊은 맥락에서 얽히는 것.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 모두.
내 뒤에 짧은 줄이 생겼다. 나는 옆으로 물러섰다. 한 여성이 “힐러리 멘틀의 새 책 주세요!”(책방 안에는 이 책이 높이 쌓여 있었다)라고 소리쳤다. 한 커플은 “새로 나온 요리책이요-추천해주실 거 있어요?”라고 말했다. (미리엄과 트로이는 이 질문을 두고 다양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을 주고받았다.) 어떤 가족은 어린아이들이 읽을 책을 찾고 있었다. 마치 은유적인 식량배급 줄-두뇌와 영혼을 먹여 살릴 식량배급 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강요된 고독과 고요 속에서, 너는 때때로 네 생애의 어떤 순간들을 돌이켜보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말해진 것들과 말하지 않은 것들, 행해진 것들과 행하지 않은 것들, 표현된 사랑과 표현되지 않은 사랑, 네가 받은 그 모든 감사한 일들, 네가 느낀 그 모든 감사함.
제시는 미소를 지으며 몇 걸음 물러서고, 우리는 부두의 끝까지 걸어가면서 만족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무언가를-누군가를-너무나 가까이에 두고 싶은데, 그리고 정말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하지 않을 것이고,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기회가 다시 올지 알 수 없다는 것.
이번 경험은 아직 살아있는 동안에 삶을 조금씩 잃어버리는 것과도 같다. 내가 뉴욕에서 알고 있던-우리 모두가 알고 있던-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상점, 식당, 콘서트, 지하철 타기, 교회 예배, 영화관, 박물관, 네일숍. 기억이 떠오를 때면 그게 사실인지, 그런 일이 정말 있었는지 의심이 들 지경이고, 그것들을 다시 상상하는 것도 불가능해보인다.
이 도시는 너무나 밀도가 높고, 너무나 긴장되어 있고, 너무나 촘촘하고, 너무나 스트레스가 심하고, 너무나 더럽고, 너무나 다양하고, 외부와의 접촉면이 너무나 거칠고, 다들 자신의 감정을 너무나 투명하게 드러내서, 이따금씩 낯선 사람의 도움을 엊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 빌 헤이스, 『별빛이 떠난 거리』
11.30.19.
텀블러에 아직 사람이 많다는 게 놀랍고, 나는 사람이 아닌 듯하다는 건 더는 놀랍지 않다. 사실 여기에 들어오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저 한동안 급하게 변을 누고 떠나는 화장실 같은 곳이었을 뿐이다. 내 위장이 다급한데 화장실 안에 누가 있는지 언제 세고 있겠나. 그런 걸 헤아리지 않는 게 도리어 예의 아니겠나. 난 세상 모든 공간 중 화장실이 제일 좋다. 아니, 그래도 서점이나 서재나 서가나 뭐 그런 곳이 더 좋긴 한데, 화장실도 좋긴 좋다.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12.27.16.
꼭, 그렇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 날이 너무 흐려서 그렇다고 쓰려고 했지만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새 바깥에 빛이 가득차 있다. 그래서 그냥 여기에 몇 자 끄적이지 않을 수 없는 기분이라고 고백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보다 자신의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혐오했다. 지금도 혐오한다. 그런데 이 혐오의 일부는 부러움이었다. 질투였다. 나는 이제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도움을 청하고 싶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상처 받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살든, 누구든 상처를 받는다. 그저 이젠 좀 다른 부위를 맞고 싶을 뿐이다. 같은 데만 계속 때리는 게 젤 나쁘다고 했다. 같은 데만 계속 맞으면 젤 아프다고 했다. 우리 이제 자리를 좀 바꾸자.
머리를 잘랐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머리를 잘랐다. 이 개월에 한 번 가던 미용실을 삼 개월에 한 번 가게 됐다는 것으로, 나는 늘어난 한 달 만큼 사람이 덜 된 것 같았다. 미용실에 가는 일 따위가 마음 단단히 먹고 할 일은 아님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 데서나 자르고 싶진 않다는 최후의 방어선을 두르고, 어쨌든 머리를 자르는 것 따위 우선순위에서 한참 먼 일로 취급했다. 나중에, 천천히, 그래도 내 마음에 드는 곳에서. 한 달 주기가 두 달이 되고, 두 달 주기가 세 달이 되는 건 금방이었다. 그리고 그런 결정 하나 내리지 못하고 유예하는 내가, 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정수리 안쪽에 물 풍선이 들어있는 것 같은 상태가 며칠, 몇 주, 몇 달 간 계속되고 있다. 현재 뇌를 구치소에 넣어둔 저 대통령처럼, 나또한 비슷하게 그 물컹한 덩어리가 하라는 대로 또는 그 물컹한 덩어리를 건드리지 않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덩어리를 도려내어 냉동실에라도 넣어둘 수가 없다. 이지엔6라고 먹으면 그 부피가 일시적으로 줄어들어 몇 시간 마음이 편해졌건만 오늘은 그마저도 약효가 없다. 이놈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은 대체로 숙주의 기분과는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숙주를 둘러싼 사소한 알력들이 균형을 이루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사춘기도 아니고 숙주로 하여금 끊임없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를 대신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기 싫은 일들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무릇 다 자란 성인이, 한 가정의 가장이 해야 하는 성숙한 일들과 보여야 하는 성숙한 태도들. 나또한 마땅히 한 표를 던지고 싶은 모든 인간의 당위들. 이 개월에 한 번 가던 미용실을 삼 개월에 한 번 가게 되고, 다음엔 사 개월 만에 갈 수도 있겠구나 싶은, 부단하지만 조악해서 더 나쁜 그 많은 노력들. 나는 사람답지 못했다. 사람답고자 애쓰다 보니 사람이 되지 못했다. 거참, 쓰고 나서도 웃기는 말인데, 결국, 이 말도, 내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11.7.16.
결코 이해할 수 없고 이해 받을 수 없다면, 남은 건 모으는 일 뿐이다. 작은 분노, 실망, 기쁨과 슬픔, 때때로 계절 냄새에 어울리는 처량함까지 하나도 밖으로 보이지 않고, 갈무리하는 일 뿐이다. 오르한 파묵이 당신들을 향한 어떤 분노로 쓴다고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제는 알겠다. 아마 그가 말하고자 한 바와는 전혀 다른 의미겠지만, 어쨌든 형식은 그대로 따르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복수는 쓰는 일 뿐이다. 아, 이게 아닌 걸 알고는 있는데, 내게 감정이 허락되는 곳은 백지 뿐이다.
일정량의 문학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매일 일정량의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매일 약을 한 수저씩 복용해야 하는 환자들 있잖습니까... 어렸을 때, 당뇨병 환자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삶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한차례씩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걸 알고 연민을 느꼈는데, 그건 그들이 반쯤 죽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문학에 대한 내 의존성도 이런 의미에서 나를 ‘반쯤 죽은’ 상태로 만듭니다. 내가 젊은 작가였을 때, 나를 두고 ‘삶에서 단절된’ 사람이라고 말한 이들도 이 ‘반쯤 죽은’ 상태를 의미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쯤 유령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가끔은 내가 죽었는데, 내 안에 있는 주검을 문학으로 소생시키려 애썼다고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내게 문학은 약처럼 필요한 존재입니다. 수저나 주사로 투여하는 약처럼 매일 ‘복용’해야 하는 문학은, 마약 중독자처럼 어떤 특성과 의미 있는 일정한 농도가 있습니다.
-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중에서.
시작부터 이런 문단이 나오면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8.4.16.
어제부터 유일한 위안은 cash cash의 데뷔 앨범이 되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여섯 번째 책도 얼마 남지 않았다. 또 일 년 정도 기다리면 다음 두 권이 나오겠지. 때론 지난하기도 하지만, 매년 프루스트와 보내는 두 달은 어쨌든 즐겁다.
다른 사람의 책을 어줍잖게나마 홍보하면서 박탈감(?)보다는 흥미를 느꼈다. 재미있는 책이다. 얼른 읽어야 개인적으로도 서평을 쓸 텐데, 현재는 미묘하게 우선순위 밖. 웃기다, 읽지도 않고 홍보라니.
지하철에선 크게 못 느끼지만, 차로 출퇴근할 땐 지금이 휴가철이긴 휴가철이란 생각이 든다. 통행량이 꽤 많이 줄었다. 청담대교는 밑에서 바라보는 것도 예쁘지만 달릴 때도 꽤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다리가 아닌 그저 간선도로의 일부인 양 널찍한 점도 마음에 든다.
11월 쯤 갓난아기를 데리고 어디라도 여행을 가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못 갈 것 같다. 일본은 싫다하고, 휴양지는 더욱 싫고, 목적지가 포틀랜드(오리건 주)라니. 당장 비행기값도 없네. 그런데 아무래도 갈 수 있을 것만 같기도 하다.
8번 트랙을 듣다가 4번 트랙으로 돌아왔다.
I already saved my life. 사랑이란 그런 거란다.
7.19.16.
음악이 끊기더니 경고음이 울렸다. 창밖에 보이는 벽이 샛밝았다. 오늘도 폭염주의보였다. 비 그치고 하루 이틀, 카운트 다운을 다 센 것처럼 무더운 날이 돌아왔다. 여름은 이래야 제맛이야, 하기에는 에어컨 없는 실내의 공기가 너무 후끈했다.
항상 여름이 끝날 때 쯤 아쉬웠다. 어떤 이상적인 여름의 이미지가 있는데 올해 역시 그 반도 못 따라갔다는 아쉬움이었다. 이상적인 여름이 뭐냐고 물으면 딱히 꼬집어 말할 수도 없었다. 왜 그런 거 있잖아, 진짜 여름 같은. 한강이나 골목길, 테라스 자리나 지글지글 타오르는 언덕길 같은 게 떠오르는 거. 매미 소리도 들리고 바람 느낌도 나는 그런 거. 아마 난 그 옆에 숱하게 있었을 텐데 너무 덥다고 불평하느라 전부 놓친 건 아닌가 싶다.
겨울엔 여름 생각이 나서 오늘이 그립곤 했다. 여름엔 일단 여름 생각만 나서 길바닥에 디귿자로 누운 강아지처럼 헐떡이느라 바빴다. 너란 계절은 현재진행형인데, 문득 잠이 들 때면 이번 여름도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구나, 벌써부터 마음이 좀 그렇다.
7.7.16.
지난 주말에 아들이 태어났다. 분만실에서 처음 그 작은 몸을 봤을 때,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일 테고, 놀라움과 안도감을 느꼈다. 왜 안 울죠, 라고 묻자마자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조금 더 마음이 놓였다.
간호사가 따뜻한 물이 담긴 통 안에 아이를 넣었다. 엄마 뱃속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지 울음을 그쳤다. 너무 작아서 직접 목욕을 시키진 못했으나 물을 끼얹어 줄 수는 있었다. 배도 다리도 조금 씻겨 주었다. 어느 시트콤에서 배운 대로 내 검지를 아이의 작은 손바닥에 가져가 보기도 했다. 아이는 적당한 힘으로 내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걱정이 끝나자 기쁨이, 마치 어디선가 자궁문이 열린 듯, 그렇게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아내는 건강했다. 분만 시간이 짧은 덕에 많이 지치지도 않았다. 요즘 같이 아이 낳기 어려운 세상에 우리 가족은 참으로 다행이라 여겨졌다. 그래, 다행이다. 그 먼 땅에서 아이를 만들어(?) 오기를 잘했다. 이제, 너가 수정된 곳이야, 라고 (말해도 알아듣진 못하겠지만) 말해주기 위해 그곳에 다시 돌아갈 시간도 마음껏 그려볼 수 있다.
여전히 작긴 해도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 이제 녀석이 하는 일은 먹고 자고 싸고 탐색하는 게 전부고, 그걸 참 자주, 참 반복해서, 참 열심히 한다. 아이고.
6.28.16.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떠드는 취객과 술에 취해 글을 올리는 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잘 들어보면 취객이 하는 말도 일정 부분 맞다. 하지만 그보다 숱한 헛소리와 같은 말을 너무 반복한 나머지 본래의 의미를 잃은 하소연에 산사태를 뒤집어쓰듯 묻히기 마련이다. 내가 술에 취해 쓴 글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도 내 쪽이 용납된다고 믿어버리는 건 우리가 취객의 격한 행동, 우렁찬 목소리, 반경 1m 정도에 진동하는 술냄새 따위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불쾌함은 바로 거기서 오는 것이니까. 어차피 내가 쓴 글은 스크롤 한 번 힘차게 올려 버리거나 백스페이스 한 번에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난 술에 취해 떠는 취객과 술에 취해 글을 올리는 나 사이에 지극한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어쨌든 알딸딸한 김에 뭔가를 지껄이고 싶은 충동은 매한가지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고, 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진상끼리 서로를 묵인하기로 한다. - 물론 취객 쪽에서는 내 상황을 알 리가 없지만. - 그 대가는 가족의 잔소리나 다음 날 찾아오는 창피스러움 따위로 응당 돌아오고는 한다.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바삭한 돼지 비계를 먹는다. 체면을 차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술기운을 빌어 지껄이고 또 지껄인다.
『본성이 답이다』, 전중환
이 실험은 마음속의 중앙 통제실에서 홀로 근무하는 자아가 계기판을 일일이 조작하여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런 자아는 없다. 그 자아의 두뇌 안에서 자아를 움직이는 이는 또 누구냐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의 심리학 연구들은 인간의 마음이 대기업이나 공공 기간의 관료 조직을 닮았다고 말한다. 각자 맡은 소임을 묵묵히 처리하며, 다른 부서의 내막은 잘 모르는 여러 부서로 구성된 대규모 조직이 인간의 마음이다. 이 중 홍보부가 하는 일은 조직이 어떻게 행동했건 간에, 이는 모두 합리적인 이유 혹은 공동체를 위한 선의에서 비롯되었다며 그럴싸한 이야기를 사후에 지어내는 것이다. 대변인은 이렇게 꾸며 낸 이야기를 외부에 선전한다. 홍보부는 조직이 그렇게 행동한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하며, 알 필요도 없다. 진짜 의사 결정은 이사회에서 이루어진다. 기쁨, 슬픔, 역겨움, 분노,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들이 어떤 구체적 상황에 처했을 때 먼 과거의 환경에서 번식에 유리했을 방향으로 행동을 취하게 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의인화된 다섯 감정들이 주인공을 움직이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도덕 판단에서 언급되는 혐오는 단순히 은유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 이 설명은 틀렸다. 최근의 수많은 연구는 사기나 학대 같은 비도덕적인 행위를 접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곰팡이가 핀 식빵 같은 불결한 물질을 볼 때 느끼는 바로 그 감정임을 보여 준다. 두 경우 모두에 대해서, 같은 뇌 부위가 활성화되며 같은 얼굴 근육들이 동원되어 역겨워하는 표정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우리가 강간범이나 연쇄 살인자를 가리켜 ‘혐오스럽다’고 할 때 이는 그냥 은유가 아니다. 정말로 오장육부가 뒤집어지는 생리적인 혐오를 경험한다는 뜻이다. 도덕 판단이 냉정한 합리적 이성뿐만 아니라 원시적인 혐오 정서에서 상당 부분 유래한다는 증거들이 있다. 한 연구에서는 방귀 냄새를 내는 분무기를 미리 잔뜩 뿌려 놓은 다음에 실험 참여자들에게 길에서 주운 지갑을 슬쩍 챙기는 행동, 이력서를 허위로 기재하는 행동 등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설문 조사했다. 그 결과, 아무 냄새가 없을 때 응답한 사람들보다 구린내가 진동할 때 응답한 사람들이 비도덕적인 행동을 더 가혹하게 단죄하였다. 마찬가지로, 쓰레기가 넘쳐 나는 지저분한 방에서 설문지를 작성한 사람들은 깨끗한 방에서 작성한 사람들보다 더 엄격한 도덕 판단을 내린다.
정서는 당면한 문제를 잘 해결하는 데 필요한 여러 심리 장치들 - 생리 반응, 지각, 주의, 추런, 기억, 동기 부여, 학습, 의사소통 등등 - 을 매끄럽게 조정하고 지휘하는 관리자다.
놀랍게도, 초콜릿은 달지 않다! 우리가 경험하는 그 생생하고 풍부한 ‘달콤함’의 감각은 모두 우리의 두뇌가 만들어 낸 허상이다. 초콜릿은 본질적으로 달지 않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과일이나 꿀처럼 높은 에너지원이 되는 음식물을 선호하는 편이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에, 우리는 당도가 높은 음식을 ‘달콤하다’고 느끼게끔 진화한 것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믿는다. 영아 살해는 정신 병리에 따르는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아 살해가 이토록 보편적이고 예측할 수 있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이것이 무의미한 골칫덩이가 아님을 보여 준다. 인간은 다른 어느 동물보다도 새끼에게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는 종이다. 신생아를 낳았을 때 아기의 자질과 주위의 상황을 신중하게 저울질한 다음에 아기에게 얼마나 투자할지 결정하는 부모의 심리가 진화하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투자 결정의 한 쪽 끝에는 온종일 아기를 안고 다니며 금이야 옥이야 돌보는 완벽한 헌신이 있다. 반대쪽 끝에는 아기를 길거리나 화장실에 버려서 투자를 멈추는 유기가 있다. 어머니가 아기를 버리지조차 못하는 상황에 부닥쳤을 때 영아 살해가 일어난다. 산모가 출산하자마자 갓난아기와 끈끈한 유대감을 자동으로 맺는다는 발상은 큰 착각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막 태어난 아기만큼 무력하고, 흐늘흐늘하고, 불결한 것은 또 없다.”고 지적했거니와, 신생아를 처음 보자마자 부모의 자애심이 분출하진 않는다. 대다수 여성이 출산 직후 겪는 가벼운 우울감은 육아라는 막중한 부담을 과연 짊어질 것인지 정확히 판단하게 도와준다. 많은 여성은 며칠 지나고 우울감이 가신 뒤에야 비로소 아기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몽상하며 즐거움을 느끼게끔 진화했는지 살펴보자. 숨을 쉬거나, 길을 걷거나, 땀 흘리는 몽상을 하면서 은밀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주로 로또에 당첨되거나, 벼락출세하거나, 통쾌히 복수하거나, 간통하는 것을 몽상한다. 이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극히 낮지만, 만약 내게 일어난다면 크나큰 진화적 성공을 주는 사건이다. 즉 사람들이 종종 꿈꾸는 판타지는 만약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오면 그걸 어떻게 잘 붙들이 미리 대비하고 계획하는 기능을 한다.
전중환, 『본성이 답이다』 중에서.
너무 술술 읽혀서 문제일 만큼 가볍게, 그러나 수많은 카드 중에서 같은 도형을 찾아내듯 내 본성(?)과 비교하면서 보게되는 책이다. 생존과 생식을 향한 만 년 간의 도전 끝에 우리는 반드시 이기적이 아니라 착해지기도 하고 협동하기도 한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와, 이렇게 쓰니까 진짜 짧은 독후감 같다.
6.24.16
브렉시트 때문에 잠깐 투사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대체로 한국에선 영연방을 애도하는 분위기였다. 나 또한 뭐하러 탈퇴해, 라는 입장이었지만, 마치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거의 트럼프 당선급으로 치부하는 의견들을, 그 의견들을 아주 바르고 정당한 의견으로 보아서 '영국'은 좆됐다는 의미로 이 상황을 재치있게 풀이한 네티즌들의 글을 모은 기사를 보았다.
난 성남에 산다. 세금 문제로 택시조차 슬로건을 붙일 정도로 난리인 곳이다. 브렉시트는 그런 느낌이다. 정부에서 다른 경기도 시와 세금을 나누라 했다고 성남을 다른 국가로 세우겠다는. 근데 실제론 아니다. 영연방을 한 도시의 한 시로 볼 수는 없다. 난 그게 두렵고 같잖다. 의미도 모르고 그저 애도하는 '이성적 판단이 자기 삶을 지배한다고 믿고있는' 이들의 딸딸이를 말이다. 내 딸딸이를 말하자면 우린 지금 영국을 애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난 이게 세계 3차대전의 전조음이라는 망상을 가진 미친놈일 뿐이다. 영연방의 EU 탈퇴 따위가 당신의 애도나 그 비슷한 퍼포먼스를 이끌어 낼 이유는 없다고 본다.
6.23.16.
긴팔 셔츠 입은 아저씨 배는 다 드러나고 바지에 옷춤 쑤셔넣을 틈도 없네요. 옆에 앉은 남자, 통화 내용 5분만 들어도 지금 바람 피우고 있는 거 다 알겠네요. 그래요, 눈쌀 찌푸리겠죠, 어쩌겠어요, 그래도 전 아니에요. 당신들 편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어차피 우린 다 한 배를 탄 거 같아서.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아요. 마흔이고 쉰이고 넘으면 페미도 마초도 없어요, 그저 관 대기열만 있을 뿐. 지기 전에 발악하는 꽃 한 송이 한 시절만 있을 뿐.
쿠엔틴 타란티노가 영화를 만드는 방법
최초의 인간
이렇게 해서 프랑수아즈는, 인간이란 (...) 장점이나 결점과 계획, 우리에 대한 견해를 가진 명료한 부동의 존재가 아니라 (...) 우리가 결코 꿰뚫고 들어갈 수 없고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도 없는 그림자이며, 이런 주제에 대해 말과 행위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내는 믿음은 각각 서로에게 불충분한 데다가 모순투성이 지식만을 제공할 뿐이며, 우리는 이런 증오와 사랑이 번득이는 그림자를 마치 진실인양 상상한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 준 최초의 인간이었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게르망트 쪽' 중에서
『고요한 집』, 오르한 파묵
우리는 기다렸다. 잠시 나는, 우리가 뭘 기다리고 있지, 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가 제케르야 씨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고는, 마치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으면서 기다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그들은 삶을 부둥켜안을 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죽는 것만 알았다, 가련한 사람들.
‘난 네게 빠지지 않았어 네가 내 이성을 혼란시켰어’
모든 건 우리가 사용한 단어와 말을 넘어선다.
우리는 한동안 더 춤을 췄다. 우리 사이에는 감춰야만 하는 어떤 단절이 있어서 서로를 껴안아 이를 은폐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들의 의견이 화합되지 않았다. 말없이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 실망하고, 슬프지만 궁금한 듯한 모습이었다. 마치 자신들이 보는 곳을 보지 않고, 정원이나 무화과나무, 귀뚜라미가 숨어 있는 풀들을 보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땀이 조금 났으며, 몸의 긴장이 풀리고, 약간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작은 참새처럼 펄펄 날곤 했다. 그런 후 창문을 열곤 했다.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고 탁한 공기는 나갈 수 있도록, 또 니샨타위 정원의 초록색 가지들이 방 안까지 뻗쳐 들어오고, 나의 꿈은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잠에서 깨어난 후, 내 꿈이 나와 헤어지던 곳에서 스스로 흘러간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죽었을 때도 어쩌면. 나의 생각들은 방 안을 돌아다닌다. 생각들은, 물건들 속에서, 꼭 닫힌 베니션 블라인드 사이에서, 나의 테이블과 침대, 벽과 천장 표면을 기어서 돌아다닌다. 살짝 문을 열어 두면 허공에서 내 생각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만 같다. 닫아 문을, 내 생각의 순수가 변질되지 않도록, 나의 추억에 독이 퍼지지 않도록.
베게의 시원한 부분을 찾으며, 붉어지는 볼과 생각을 상쾌하게 하려고 애쓰는 그 불면의 밤만 끝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럼 네가 희망이라고 하는 그건 뭔데?” (…)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거야. 죽지 않도록 지탱하는 것. 그러니까, 인간은 어렸을 때 이렇게 생각하잖아,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라고. 그러면, 내 마음은 반항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꽉 차올랐어. 이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 결국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 오빠는 오빠가 죽은 후 어떻게 될지 궁금하잖아, 이런 호기심은, 견딜 수 없이 끔찍한 것이야.”
나의 모든 의식이 지워지기를, 나의 과거에서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기를, 미래와 기대에 대한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기를 바랐다. 내 이성의 상상에서 벗어나, 이성 밖에 존재하는 세계에서 자유롭게 거닐고 싶었다.
나는 계피 냄새를 맡곤 했고, 아무것도 몰랐다, 사랑받기 위해선 모든 걸 알아야 한다는 것도.
파룩과 그녀가 동시에 메틴을 바라봤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매를 맞은 아이처럼 풀이 죽어 앉아 있었다. 매는 맞았지만, 우는 것마저 허락받지 못한 아이처럼. 손에는 빵이 들려 있었지만 그것이 빵인지조차 모르는 것처럼 한동안 멍하니 바라본 후, 노망난 노인처럼, 어렵사리 자신을 기억해 내고는 빵에 버터와 잼을 발랐고, 그것이 자신이 먹던 빵 조각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과, 지나가 버린 아름다운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인 듯 갑자기 희망에 차 빵을 물었다. 하지만 곧 승리의 희망을 잊고, 입에 든 빵도 잊은 듯, 턱 사이에 자갈을 물고 있는 듯, 그렇게 꼼짝 않고 있었다.
궁금증이 이는 게 두려워서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기다려야 하고, 아무도 없는 고요한 겨울 밤에 그랬던 것처럼 시간을 한 조각 한 조각 오렌지처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넌 삶을, 단 한 번의 그 마차 여행을, 끝나면 다시 시작할 수 없어, 하지만 손에 책 한 권이 들려 있다면, 그 책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호해도, 다 읽고 나서, 그 모호함과 삶을 다시 이해하기 위해, 원한다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 읽은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어, 그렇지 않니, 파트마?
강조는 내가.
오르한 파묵의 『고요한 집』 중에서.
1. 문학을, 자신의 도시를 사랑한다면 오르한 파묵처럼 쓰고 읽어야 한다. 2. 그도 프루스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쁘다. 3. 아직 순서가 많이 남아있지만, 얼른 『검은 책』에서 접은 페이지도 이곳에 옮기고 싶다. 4. 어느 누가 시간을 한 조각 한 조각 오렌지처럼 나눈다고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