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avan에 대한 예찬 카라반 이곡은 무슨 곡인가? 찾아보면 단순한 재즈곡에 불가하다. 그런데 왜 나는 왜 이 곡을 택하고, 독자에게 설명을 하려는가? 이 곡 자체는 혼자 있을때는 위압감을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에 가면 이 노래는 거대한 위압감을 가진다. 본작 영화에서는 10분이라는 시간을 이 곡에 투자를 하면서, 이 곡이 지니는 주인공의 마지막 연주를 보여준다. 그것을 본 관객은 앞의 주인공의 노력을 이 연주로 모두 쏟아내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 결과상 우리는 10분동안 아무짓도 하지 않고, 그 영화를 심도깊게 보게된다. 우리 관객들은 다른 딴짓을 못할정도로 집중을 하게된다. 이 모든 연주가 끝날때까지도 이 카라반이란 곡에 대해서, 정말 좋은 곡이야 박수를 치며 나간다. 카라반의 곡의 흐름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자체를 모르는 분에 대해서, 계략적인 설명을 드리자면, 이 곡의 핵심은 엄밀히 말하자면, 피아노도,색소폰도,콘트라베이스도 아니다. “드럼”이 핵심이다. 처음부터 4분동안 비중은 약한편이만, 4분이후 부터 9분15초라는 시간 동안은 오로지 그 하나로 가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지루하지도 않다.오히려 더 긴박감을 만들뿐. 점점 사그라드는 촛불처럼 약해지던 그 드럼은 마지막을 향하면서, 힘차고 강렬한 비트로, 점점 미친듯하게 심벌과 드럼을 치는 사운드를 듣는다. 듣고나면, 우리는 그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미쳤다” 처음에는 그저 다른 악기에 반주를 맞추며, 흘러가는 곡인가 싶기도 하지만, 후반부를 가면서 자신의 길로 향하는 그 드럼의 연주는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필자 자신이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아니므로, 이 곡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해보아도 그렇게 도움 되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이 전반적인 곡에 대한 나의 감상은 정말로 나의 인생을 다시보게끔하는 역할을 차지 하고있다. 내가 앞에 카라반에 대해서 찬송 아니 찬양을 하면서 이 노래의 감상글을 쓰는 이유 역시 비슷하다. 영화자체의 스토리와 카라반의 곡 구성은 거의 동일선상에 존재하고 있다. 이 글에서 드럼과 주인공은 동일격으로 읽어야지 이해가 쉽다. 처음에는 드럼은 핵심이 아니며 그저 재즈 악기(색스폰,피아노)들에게 묻혀서 잘 들리지도 않고, 뒤에서 전반적인 곡을 리드하는 타입이라면, 후반부로 갈수록 이곡에서는 드럼 자신이 곡 자체를 끌고간다. 즉, 마치 인생에서 전반부만해도 내가아닌 타인에게 끌려다니는, 혹은 그저 누군가의 뒷받침에 불구한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후반부의 곡처럼, 나 스스로가 끌고 가는 삶과 같이 노력끝에 전반부적인 삶보다 자신의 끝을 보는 곡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이걸 신봉하면서까지 찬양하는 이유에는 이 영화를 보고 이 노래를 들을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털어내기도 힘들고, 어쩌면 영원히 안잊혀질 그런 기억들 중 하나를 Carvan은 고스란히 꺼내주는 곡이어서 항상 반성하게되는 곡이기 때문이다. 아, 물론, 맨날 들으면서 반성합니다. 이 정도로 듣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드는 생각은 위플래쉬의 영화 내에서도 나왔지만 플래쳐교수가 하는 그 말 “그만하면 됐어”라는 단순하지만, 복잡한 말이다. 왜냐하면, 나나, 이걸 읽을 당신에게 던지는 화두는 언제나 그 그만하면 됐다는 우리가 얼마나 노력을 했냐가 포인트가 아니다. 단지, 우리가 후회가 없을정도로 노력을 했느냐? 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반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곡을 완주하는 영화 속 우리 주인공은 그 교수에 의해서 완전히 부셔지지만, 그것에 개의치않고 그 곡을 마지막까지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것이 “그만하면 됐어”라는 말의 대한 좋은 어퍼컷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어퍼컷을 언젠가 날려보고 싶은 필자 생각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