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정말 비열해요. 인간은 동물로 태어납니다. 인간으로 죽을 수 있을지는 각자의 노력에 달렸고요. 대부분 동물로 태어나서 동물로 죽죠.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교양을 갖춰야 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데 취직하기 위해 머리에 지식을 쑤셔 넣는 일은 교양이 아니에요. 그 예를 관동대지진에서 볼 수 있어요. 그때 일본 정부는 대중의 분노가 국가로 향하면 난감하니까 다른 곳으로 돌렸죠. 조선인들을 제물로 던져줬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켜 쳐들어 올 거라고 소문냈어요. 도쿄 사람들은 ‘조선인이 오면 다 죽여 버리겠다’고 했고, 대학 교수들도 나섰습니다. 그때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외쳤던 이는 생선가게 주인이었습니다. 대학 교수와 생선장수, 둘 중 누가 더 교양인일까요?
마루야마 = 인간은 세뇌당하기 쉬워요. 특히 국가, 학자, 유명인의 말은 비판없이 받아들이죠. 방송에서 끊임없이 같은 말을 하면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침해당합니다. 일본어에 고코로구미(心組·마음가짐)라고 있어요. 스스로가 마음을 단단히 가지는 것. 반드시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이래도 괜찮은가’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은 진짜인가’ ‘국가가 말하는 것이 옳은 걸까’라고 질문하고 자기 답을 찾는 것을 ‘고코로구미를 단단히 한다’라고 하죠. 안 그러면 순식간에 당해요.
안 = 그러려면 전체 판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마루야마 = (질문을 자르며) 판이 아니에요. 한 점을 봐야 해요. 제가 오프로드 바이크를 타는데, 절벽으로 치달을 때 빠져나오는 법을 알려줄게요. 급커브를 틀어야 살아요. 아마추어는 무서우니까 이곳 저곳 둘러보며 상황을 잽니다. 하지만 프로는 출구 한 점만을 응시하죠. 전체를 본다고 두리번거리면 시선이 애매해져요.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칩니다. 한 점이 왜 중요한가?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가장 중요한 한 점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그 지점이 우리 마음을 단단히 다잡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지식인 중에 외국 신문, 일본 신문 이 잡듯 읽는 이들이 있어요. 뭔가 안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겠죠. 그런데 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몰라요. 우리는 스스로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세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철학자들이 잘못하는 것이 서재에 들어가 아무도 안 만나고 골똘히 ‘인생은 이렇다’ ‘인간은 저렇다’ 답을 내리는데, 그 과정에서 답은 왜곡됩니다. 풀 한 포기, 작은 나무 한 그루를 키우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을 평생 모르고 살아요. 아까 생선장수 이야기했죠? 아침부터 밤까지 생선만 팔았을 거예요. 신문도, 철학서도 안 읽고. 그래도 ‘조선인이 침략해 온다는 소리는 거짓이다’라고 단칼에 답을 내렸잖아요. 전체를 보는 것은 그런 것이에요. 전체를 보고 싶다면 전체를 보지 마라. 한 점을 봐라!
안 = 한 점, 어디에 찍어야 할까요? 마루야마 =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이것만은 지키겠다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자문해보고 ‘이것을 양보하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하는 것,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을 확보해야죠. 그것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겁니다.














